[기자의 눈]이병기/「백금카드」신청 아우성

  • 입력 1998년 10월 15일 18시 58분


10여년전 신용카드보급이 본격화하면서 카드회사들은 일반고객과 VIP고객을 차별화하기 위해 골드카드도 함께 보급했다. 선진국 업체들은 골드카드 회원 적정수를 일반카드 회원의 5∼15%선으로 본다.

그러나 이 회원 수는 한국의 풍토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한국 사회에선 골드카드가 ‘신용의 상징’일 수 없다.

너도 나도 골드카드를 발급해달라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드회사의 과당경쟁이 덧붙여져 현재 한국에서 비자 골드카드 회원은 전체 회원의 30∼35%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골드카드와 일반카드의 서비스는별차이가없다. ‘VIP’라는 글자와 ‘황금색’컬러, 그리고 긴급대출한도가 다를 뿐 이다.

골드카드가 희소성과 가치를 잃자 외환비자카드는 이달초 ‘진짜 VIP’고객용이라며 연회비가 다섯배나 비싼 플래티넘(백금)카드를 내놓았다.

플래티넘카드 발급 자격은 현직 국회의원과 판검사, 35세 이상 의사 변호사, 30대 대기업 상무 등. 회원 4백50만명 중 1만∼3만명에게만 발급할 계획.

이 사실이 알려진 후 요즘 이 회사 간부들은 “플래티넘카드를 발급해 달라”는 요구가 쇄도해 고민이다. 발급을 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격미달이기 때문. 회사측은 “골드카드와 별 차이가 없다”며 거절하지만 이를 선뜻 수긍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

회사 직원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IMF 덕분에 외형적으로만 거품이 빠졌지 아직 의식에서는 거품이 빠지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플래티넘카드도 곧 회원이 넘쳐 또다른 색깔의 신용카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병기<사회부>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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