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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9월 29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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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일찍이 학업을 포기한 것이나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노래를 부른 것. 또 시내트라가 97년 미 의회가 국민에게 주는 최고상인 ‘의회금메달상’을, 김씨가 80년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는 등 생전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눈물젖은 두만강’과 ‘마이 웨이’가 결코 닮을 수 없는 점도 있다. 시내트라는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 있는 그의 부모 곁에 행복하게 묻혔다. 하지만 김씨는 같은 주 샌타클래라시의 한 묘지에 ‘잠시’ 묻힐 수밖에 없다. 생전 “잠시 가족이 있는 미국에 있다가 죽어서라도 고향 원산 땅에 묻히겠다”는 그의 꿈 때문이다.
가요계에서는 두 사람의 타계를 얘기하면서 내년 1주기의 모습을 우려하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은 뒤 그의 기념관에 인파가 끊이지 않고 제임스 딘이 탔던 오토바이를 보관하는 게 미국의 분위기다. 스타에 대한 추억을 기리는 한편 자연스럽게 문화상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남인수 백년설 등 몇몇 작고한 원로가수의 노래비를 세운 것을 빼면 기념관 하나 없는 실정이다. 문화의 시대, 21세기 정부의 문화정책은 이런 곳에서 시작돼야 하는 게 아닐까.
김갑식<문화부>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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