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김순덕/『둘째딸 보고 또 보자』

  • 입력 1998년 8월 29일 10시 31분


“검사가 그렇게 대단하디?”(언니)

“그러는 넌? 밥 하나 할 줄 모르는 게 시집만 가겠다구? 결혼에 환장들렸냐!”(동생)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안방의 여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M

BC일일극 ‘보고 또 보고’의 한 장면이다.

한살 위의 언니를 ‘공주병 애완견’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은 미운 오리새끼처럼 자란 악바리 은주(김지수 분)다.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착한 척 내숭떨면서 집에서는 독한 여자 본색을 있는대로 드러내는, 한마디로 이중인격 위선자요 좋게 보면 삶을 디자인할 줄 아는 여자다.

애들 키우는 집에서는 비교육적 드라마라고 걱정할 만큼 욕먹게 군다.

그런데 이렇게 얄밉고도 못된 은주가 상당수의 둘째딸들에게는 “맞아 맞아” 소리를 듣고 있다. 이름하여 둘째딸 콤플렉스. 맏딸에게 첫정을 듬뿍 쏟는 엄마 밑에서, 언니 어깨 너머로 저혼자 한글을 깨쳐도 기특하단 칭찬 한번 못받고 자란 둘째딸 아니면 그 설움 모른다.

맏이나 막내 또는 외둥이의 특권도 없다. 게다가 아들도 아니어서 집안내 정권교체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치열한 생존본능과 열정적 에너지, 적극성과 성취욕을 갖추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착한 여자는 하늘로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지 간다’는 책이 몇해전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지만 ‘맏딸은 하늘로 가고 둘째딸은 어디로든지 간다’로 바꿔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의 둘째 딸들이 이제는 태어나지도 못하게 됐다는 우려가 인다.

갈수록 더해가는 남아선호 경향에다 IMF체제로 인한 출산율 저하 때문에 둘째가, 더구나 딸딸이 태어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이 땅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잘된 일일까, 아니면 슬픈 일일까.

김순덕 (문화부)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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