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32)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36분


제2장 달의 잠행⑧

마을 아래 못을 돌아나가 텅 빈 수몰 마을과 부희의 집을 지나는 낭떠러지 계곡 길을 나가 작은 마을들이 포도송이처럼 달라붙어 있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온천 마을과 우체국과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단층 상점 거리를 지나 국도를 달렸다. 길은 계속 구불거리는 오르막이었다가 고개 위의 낡고 허름한 휴게소를 지나면서 구불거리는 내리막길이 되었다. 차창을 올릴 수가 없어 에어컨 바람도 소용이 없었다.

15 분 여만에 카센터와 세차장을 겸하고 있는 도로 가의 가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앞이 횅하니 열린 초록색 텐트 창고에 앉은 두 남자가 보였다. 둘 다 폐타이어 위에 걸터앉아 똑 같은 정도로 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차문을 고치러 왔어요.

내가 말을 하자 그들은 둘 다 동시에 여기까지라는 듯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얼굴이 흰 사람은 원래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처럼 수돗물을 틀고 호스를 들어올려 차를 씻기 시작했다. 차는 밀크 색의 체로키였다. 어쩐지 낯익은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검고 기름옷을 입은 남자는 벌써 차 창문을 내리는 스위치를 만지고 있었다.

―창문이 꼼짝도 하지 않아요.

―뜯어봐야 알아요. 모터가 나갔으면 일이 복잡합니다.

남자는 차를 타고 창고 앞으로 바싹 들이대고 내리면서 말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기다려요. 거긴 선풍기도 있으니.

늘어선 창고 사이에 유일하게 유리문이 붙어 있는 곳이 사무실인 것 같았다. 남자는 공구가 가득 든 손잡이 달린 플라스틱 통을 끌어내 손잡이가 긴 커다란 드라이버로 차문의 안쪽 나사들을 풀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에서 이내 콩 같이 커다란 땀이 툭툭 떨어졌다. 나 역시 더워서 속 머리카락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사무실로 가보니 유리문 안에 한 남자가 선풍기 앞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문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벽의 선반에는 카 액세서리가 종류별로 몇 가지씩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고 서성대다가 다시 차를 고치는 창고 앞으로 갔다. 엔지니어 남자가 차문 안쪽을 풀고 있었다. 드라이버로 나사를 푸는 그의 얼굴에서 연신 땀이 투둑 떨어졌다. 그때 사무실에서 남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뜻밖에도 윗집 남자였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조금 다가왔다.

나는 눈인사를 했다. 역시 세차 중인 차는 그의 차였다.

―모터가 나갔어요.

엔지니어 남자가 투덜댔다.

―그러면요?

―좀 기다려야 해요.

―얼마나요?

―모터를 주문해서 배달 받을 때까지죠.

―얼마나 걸리죠.?

―오후 4시는 되야 될 걸요. 지금이 11시니, 차를 두고 가셨다가 나중에 오세요.

―안돼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거든요.

―그러면 일이 귀찮아져요. 이 더운 날씨에 이걸 또 조립해요? 그냥 오늘은 택시 타고 다니세요.

나는 어쩌면 좋겠느냐는 얼굴로 윗집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키를 흔들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차 쪽으로 갔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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