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강정훈/수색 발목잡는 「높은 분」들

  • 입력 1998년 8월 4일 19시 35분


“며칠째 실종자 수색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렇게 차도 못다니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3일 오후 6시반경 지리산 동부지역 재해대책상황실이 마련된 경남 산청군 삼장면사무소앞.

자율방범대원으로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섰던 조모씨(40) 등이 차를 타고 면사무소로 들어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자 “도대체 왜 길을 막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그 시각, 면사무소 안에서는 엄삼탁(嚴三鐸)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국민회의 지리산 수해대책 위문 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상황실 관계자로부터 피해현황 등을 보고 받고 있었다.

경찰은 엄부총재 일행 20여명이 타고온 승용차 등으로 면사무소 주차장이 혼잡을 빚자 아예 주변 도로에도 차를 세우지 못하도록 통제했고 조씨 등은 “실제 일하는 사람은 누군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삼장면 재해대책상황실에는 이날 하루동안 엄부총재 일행외에 최재욱(崔在旭)환경부장관, 권익현(權翊鉉)한나라당 의원, 남기옥(南基玉)의장을 비롯한 도의원 일행 등이 다녀갔다. 사회단체의 방문도 줄을 이었다. 그 때마다 산청군수 등 관계자들은 ‘본연의 업무’를 미룬 채 수색작업현황 등을 보고했다.

이에 앞서 2일에는 김정길(金正吉)행정자치부장관과 김혁규(金爀珪)경남지사 등이 다녀갔다. 김장관 순시때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교통편 등 일정을 조정하느라 현지 관계자들이 진땀을 뺐다.

경남도청에 설치된 경남도 재해대책본부도 ‘방문객 영접’에 시간을 허비하기는 마찬가지. 구조대 지휘보다는 ‘몇시에 누가 온다더라’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경남도의 한 직원은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윗사람들의 뜻은 이해하지만 당장 시급한 일은 한구의 시체라도 더 수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청〓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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