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김순덕/「딴소리 증후군」

  • 입력 1998년 7월 31일 19시 13분


사오정이 여자친구와 드라이브를 갔다. 여자가 외쳤다. “자기, 속도 좀 줄여봐.” 사오정도 소리쳤다. “나도 자기 사랑해.”

요즘 PC통신에서 유행하는 사오정 시리즈의 한 토막이다. 하나도 웃기지 않기에 초등학생 아이를 붙잡고 왜 사오정이 인기있느냐고 물어봤다. 역시 어른들이 아는 옛날 사오정이 아니었다. 만화가 허영만이 ‘손오공’을 변형해 만든 KBS TV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등장하는 캐릭터란다.

손오공이나 저팔계처럼 주인공도, 영악한 인물도 아니다. 늘 벙거지인지, 거적때기인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남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한다. 이런 자에게는 휴대전화도 소용없다. 스님과 숲속을 걷는데 휴대전화가 울리면 한참 못듣고 있다가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땐 스님이 전화받는 겁니다”할테니까.

삐삐에, 휴대전화에, 컴퓨터통신에, 인터넷까지. 온몸이 미디어요, 살아있는 안테나가 되어 사는 정보화사회 속의 우리들에게 사오정처럼 커뮤니케이션의 불통과 엇갈림을 그린 유머가 유행한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유머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메시지를 발신하고 수신해도, 아무리 첨단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하더라도 저마다의 벙거지를 쓰고 있는 한 정보와 의사는 통할 수 없다. 만득이 귀신처럼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공포스럽지만 사오정같이 남의 메시지를 자기 식으로 알아들을 때는 일상도 비극이 된다.

양측이 분명히 합의해놓고도 돌아서서는 딴말만 하는 정치인과 재벌들, 각기 다른 의미의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자기만이 진정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 가슴 속에 사오정 하나씩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법인데….

김순덕<문화부>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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