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키부츠 자원봉사의 「환상」

  • 입력 1998년 7월 30일 19시 26분


‘돈도 벌면서 어학도 배울 수 있는 곳?’

대학원생 허모씨(27)는 올해 4월 한 여행사로부터 이스라엘의 협동농장인 ‘키부츠’에서 실시한다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만 해도 기대에 부풀었다.

항공료와 약간의 등록비용만 있으면 최장 6개월간 키부츠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 영어도 배우고 문화체험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것.

그러나 4월말 낯선땅 이스라엘에 첫발을 내딘 허씨는 실망과 마주쳐야 했다. 숙소는 호텔수준이라는 주최측의 사전 설명과는 달리 허씨가 들어간 곳은 9명이 새우잠을 자야 하는 컨테이너 박스였다.

함께 지내는 외국인들중 영어권 사람들은 별로 없어 영어로 대화할 기회는 드물었다. 자국에서 범죄를 저지른후 도피처로 키부츠를 찾아들어 밤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

고된 노동으로 일이 끝나자마자 피곤해 곯아떨어지기 일쑤여서 외국인과 사귈 수도 없었다.

한국학생들을 마치 중국인이나 태국인 노동자로 취급하는 것도 서글펐다.

일부 접경지역의 키부츠에서는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 대비한 방패막이로 자원봉사 외국인들을 이용한다는 말도 들렸다.

결국 허씨는 ‘대도시로 빠져나간 현지인들을 대신해 하루 3달러짜리 외국 노동력을 제공받는 것이 자원봉사 프로그램의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자 두달만에 짐을 싸 귀국했다.

97년 3월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인들은 현재까지 8백여명.

키부츠 한국대표부 고정원(高禎園)팀장은 “키부츠에 대한 환상만을 갖고 떠나는 일부 학생들이 현지적응을 못하고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원봉사활동으로서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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