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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7월 22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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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흔은 의사가 수면병이라고 진단했을 정도로 많은 잠을 잤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그 병도 나중엔 가정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지경이었다. 수의 유치원 행사에 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 지하 슈퍼마켓에 가서 계란 한 줄 사는 일조차 하지 않고 공동 목욕탕에도 가지 않고 두문 불출했다.
하루종일 구겨진 실내복 차림으로 보냈고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보지 않았고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 몸은 점점 더 야위는데 얼굴은 언제나 부어 있었다. 손톱은 길어서 부서졌고 엉성하게 길어버린 머리카락은 지푸라기처럼 끝이 갈라졌다. 미흔이 그나마 간신히 해내려고 애썼던 일은 아침에 수를 유치원에 보내는 일 정도였다.
나중에는 아주 간단한 집안 일조차 불가능했다. 빨래들이 둘둘 말린 채 구석에 쌓여 있었다. 세탁기 속엔 더러운 빨래들이 습기에 눅눅해진 채로 가득 들어 있었고 냉장고는 텅 비었으며, 먼지가 덮인 거실엔 수의 장난감 상자가 뒤집혀져 뒹굴었다. 그리고 쌀통에서는 작은 나방이 나와 방안에서 날아다녔고 목욕탕 바닥엔 푸른곰팡이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미흔은 밥을 짓지 않았다. 그런 날이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부엌의 싱크대에는 물 얼룩이 말라붙은 채 고적했다. 수에게는 햄버거나 김밥이나, 튀긴 닭이나 빵을 사먹게 했다. 밥통은 코드가 빠진 채로 텅 비고 차갑게 식은 채 놓여 있었다. 밤중에 들어 온 나는 화가 난 나머지 메마르고 텅 빈 밥통을 부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가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베란다에 나가 11층 아래로 내던져 버렸다.
의사는 미흔의 증상을 만성우울증과 무력증으로 진단하고 환경을 바꾸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파출부를 불렀다. 그리고 그 더럽혀진 집과 미흔의 낮잠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았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면 정말 나부터라도 다르게 살고 싶었다. 당시 나 자신도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첫 직장이었던 출판사를 2년만에 그만두고 편집, 인쇄소를 낸 뒤, 4년여 동안 일에만 파묻혀 지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밤을 새웠고 늘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으며 어쩌다 빨리 오는 날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일이 궤도에 오를 쯤 편집, 인쇄업은 금세 사양산업이 되었다. 사무자동화 시스템, 컴퓨터 때문이었다.
개인용 프린터기와 복사기의 저가 보급. 나의 거래처들은 더 이상 외부에 편집 인쇄를 맡길 일이 없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충격은 주 거래처였던 제법 큰 의류 회사의 일이 끊어진 데 있었다. 처음에는 매뉴얼과 카탈로그 제작을 조금씩 줄이더니 급기야는 홍보 부장이 퇴직을 당하고 담당자가 바뀌면서 거래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었다.
6개월여 동안 적자가 이어지자 나는 먼저 인쇄기를 처분해버렸다. 2년 동안이나 옆방에서 돌아갔던 인쇄기가 사라지자 어찌나 조용한지 사무실이 무덤 속 같았다. 두 달 뒤에는 편집부장과 오퍼레이터 아가씨 둘도 한꺼번에 내보내야 했다. 사무실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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