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에펠탑도 팔리는가?

  • 입력 1998년 7월 9일 19시 34분


007의 적(敵)은 세월에 따라 바뀌어 왔다. 1962년의 제1탄 ‘닥터 노’ 이래 제임스 본드는 소련제국과 핵 테러리스트, 러시아 극우민족주의 그룹과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 등을 쳐부수었다. 그러나 최신작인 제18탄 ‘네버 다이’는 뜻밖의 적을 만들어냈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 때문에 전쟁까지 도발하는 미디어 제국이다.

▼‘네버 다이’의 악인(惡人) 엘리엇 카버는 호주출신의 세계적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다만 명예훼손으로 제소될까봐 황색언론의 원조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세계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를 합성했다고 한다. 할리우드가 미디어제국을 이 시대 최대의 위협으로 설정한 것은 왜일까. 조작된 것까지를 포함한 온갖 정보를 통해 인류의 정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자존심’ 롤스 로이스가 독일 폴크스 바겐에 팔려도 영국인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나중에 되샀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록펠러센터가 일본 미쓰비시(三菱)에 팔렸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컬럼비아 영화사를 일본 소니가 사들이자 미국인들은 “미국의 혼(魂)이 팔렸다”(뉴스위크)며 흥분했다. 인간의 정신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파리의 에펠탑이 미국에 팔릴 것 같다는 소식이다. 프랑스인들은 꽤 놀라는 모양이다. 재무장관과 파리시장이 소유권을 넘기지 않겠다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시 프랑스의 혼이 팔린다고 본 것일까. 무엇이든 사고 파는 시대의 물결은 우리에게도 몰려왔다. 기아자동차도 포항제철도 담배인삼공사도 외국에 넘어갈지 모른다. 이제 외국돈을 적대시하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다. 단 조건이 있다. 영혼은 앗아가지 않는다는.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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