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64)

  • 입력 1998년 7월 7일 20시 13분


―무슨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그가 묻자 봉순이 언니는 딸린 자식을 데리고 시집가는 여자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짱이라고 했지. 너는 뭐가 먹고 싶니?

남자가 부드럽게 물었다. 다행히도 그 역시 나의 존재를 별로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남자의 말투가 조금 자연스럽지 않긴 했지만 그건 그가 좋은 의미에서 촌스럽고, 그래서 어색하고, 또 그래서 수줍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아까 그가 점심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생각해놓은 이름을 댔다.

―돈가스요!

남자의 얼굴에 난처함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경양식을 파는 집이 별로 없는 때였다. 남자는 사실 돈가스 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듯했다.

―그래? 그 도…. 그걸, 어디서 먹는데?

남자는 돈가스라는 이름을 몰라 어물거렸지만 나는 다방 사람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박또박한 소리로 의기양양하게 대꾸했다.

―여기서요, 육교를 건너서요, 추계국민학교 쪽으로 쪼금만 올라가면요, 솔로몬 통닭집이 나오걸랑요, 거기서 팔아요, 잘 모르시면 절 따라오시면 돼요.

나는 앞장 서 걸었다. 그 뒤를 남자가 엉거주춤 걷고 그 뒤를 봉순이 언니가 따라오고, 남자는 이 복잡한 서울에서 나를 놓칠세라, 봉순이 언니가 따라오는지 살펴보랴, 이른 봄인데도 땀을 닦고 있었다. 육교를 건너 솔로몬 통닭집을 향해 걸었다.

굴레방다리에 지금도 있는 송림소아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도 울지 않았거나, 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엄마는 가끔 나를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돈가스나 오므라이스를 사주곤 했었다. 토마토케첩을 뿌린 돈가스의 그 고소하고 파삭파삭한 맛이라니.

우리 셋은 그 솔로몬 통닭집으로 가서 돈가스를 먹었다. 내가 콜라도 한잔 얻어 먹었음은 물론이었다. 형부가 될 그 남자가 전혀 칼질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봉순이 언니가 돈가스를 썰어 남자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 순간 봉순이 언니가 남자의 접시를 끌어 당겨 고기를 썰어서는 다시 그에게 넘겨주는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붉어지고 그리고 목이 콱 메는 듯 했던 것을, 그리고 또 전염이라도 되듯이 봉순이언니의 얼굴 역시 붉어지고, 둘 사이에 이전에는 없었던 그윽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을.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무런 이견 없이 미자언니의 집으로 갔다. 봉순이 언니는 웬 일인지 미자 언니가 내어주는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대청에 걸터앉아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참 이상두 하지? 그 남자한테 돈가스를 썰어서 밀어주는 순간, 그 남자가 목이 콱 메여하는 게 느껴지는 거야. 그 순간, 이 사람 그동안 부인 죽고 얼마나 혼자 외롭고 쓸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람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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