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상전향제 폐지

  • 입력 1998년 7월 2일 19시 29분


미전향장기수 남파간첩 공안사범 등에 대한 사상전향제를 폐지하고 이를 ‘준법서약서’ 제출로 전환하겠다는 정부방침은 남북분단 반세기만의 획기적 변화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사상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내면 사면 복권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새 방침을 8월15일 건국 50주년기념 사면 복권때부터 적용해 좌익사범들의 묶였던 몸과 사회적 권리를 대거 풀어줄 전망이다.

정부의 방침은 긴 세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교육받아온 국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반면 국민대화합과 인권존중 차원에서 일단 진전된 조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는 내면(內面)세계의 자유로서 국가가 전향을 강제할 수 없는 불가침(不可侵)의 기본권이다. 그런 점에서 인권침해국가라는 그동안의 국제적 비판과 양심수 논란을 줄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럼에도 사상전향제 폐지를 바라보는 눈은 긍정적 평가와 함께 불안과 우려가 교차한다.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집착해 왔다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남북은 엄연히 대결상태에 있다. 최근의 북한잠수정 침투사건은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국민정서상 상당한 거부감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충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념의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새 방침이 실시된다 해도 민주주의 교육을 한층 강화하고 안보 경각심을 새롭게 다질 것이 요구된다.

공안사범들이 출소후 좌익사상을 전파하거나 다시 폭력을 사용해 체제전복을 기도할 위험성도 경계해야 한다. 준법서약서를 받되 사면 대상자를 치밀하고 신중하게 선별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재범가능성에 대비해 출소후 사후관리 대책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물론 이번 방침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우리 체제내에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면 큰 문제다. 아울러 북한당국에 대해서도 정치범문제를 개선하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옳다.

또 하나, 선거사범이나 권력형비리에 연루된 사람에 대한 사면은 본란이 여러 차례 지적해온 대로 선거문화발전과 부패근절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이들을 사면 복권할 경우 한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고 다른 입으로는 개혁을 저지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선거사범 사면의 이유가 혹시 화합차원이라면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재고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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