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코끼리 아저씨」,찡한 감동 잔잔한 여운

  • 입력 1998년 6월 9일 07시 02분


나는 방안에 웅숭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엄마 아빠는 항해를 떠났다가 폭풍우를 만나 실종됐어요.

…,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안녕, 난 너의 아저씨란다.” 나는 코끼리 아저씨를 쳐다보았어요. “무얼 그리 뚫어져라 보니?” 아저씨가 물었어요.

“아하, 그래, 내 주름살을 보는구나.” “정말 주름살이 많네요!”

“그래, 난 나무의 이파리들보다도 주름살이 더 많아…. 난 바닷가의 모래알보다도 주름살이 더 많아…. 난 하늘의 별들보다도 주름살이 더 많아….”

비룡소에서 펴낸 ‘코끼리 아저씨’. ‘개구리와 두꺼비’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 작가 아놀드 로벨. 그의 그림동화는 작가가 펜으로 그린 섬세한 터치의 그림과 수채물감을 이용한 인물 배경 묘사가 더없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 실의에 빠진 아이. 그 아이를 다독이는 늙고, 주름살 많은 코끼리 아저씨. 둘이서 주고받는 사랑과 우정의 대화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감정의 울림을 남긴다. 서로의 마음에 스미는 따스한 눈길이 절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 나는 코끼리 아저씨 집으로 왔어요. 아저씨는 선반에서 등잔을 내려 불을 켰어요. 그런데 등잔 안에서 조그만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어이, 안녕하슈?”

코끼리 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이 등잔이 말을 다 하는구나!” “마술 등잔이네요!”

“그러면 우리 소원이 이루어지겠다!”하고 아저씨가 말했어요.

“혼자서 비행할 수 있는 비행기가 있었으면!”하고 내가 외쳤어요.

“땡땡이 무늬 윗도리하고 줄무늬 바지가 있었으면!”

“아이스크림 열 숟가락 얹은 바나나 조각이 있었으면!”

“커다란 여송연이 백 가치 들어 있는 상자가 하나 있었으면!”

우리는 열심히 등잔을 문질렀어요.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지요.

등잔 안에선 조그만 거미가 기어 나왔어요. “나는 여러분이 등잔불을 끄고 날 편안하게 놔 두었으면 좋겠수!” 그리고 말했어요. “난 등잔 안에 사는데, 등잔이 점점 뜨거워져서 말이야….”

코끼리 아저씨는 거미의 소원을 들어 주었어요. 등잔불을 끄자 거미는 아주 기뻐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달빛 아래에서 저녁밥을 먹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코끼리 아저씨 집으로 전보가 한 장 왔어요. 엄마 아빠에게서 온 전보였어요. 엄마 아빠가 살아계셨던 거예요! 우리는 춤을 추었어요. “너를 얼른 집으로 데려다 주어야겠다.”

나는 코끼리 아저씨하고 기차를 탔지요. 우리는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하나, 둘, 셋, 넷….” 코끼리 아저씨가 숫자를 세었어요.

“집을세고계세요?”“아니란다.”

“밭고랑을 세고 계세요?” “아니란다.”

“아, 알았어요. 아저씨는 지금 전봇대를 세고 계시죠?” “아니란다, 아니야.”

아빠 엄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달려가 안겼지요.

그날 밤, 내가 잠들기 전에 코끼리 아저씨가 방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물었어요. “내가 기차 안에서 센 게 무엇인지 너 알고 싶지?”

“예….”

“나는 날들을 세었단다.” “아, 우리가 함께 보낸 날들을 말이죠?”

“그래. 정말 멋진 나날들이었지. 그런데 너무도 빨리 지나갔구나….”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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