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태그룹 해체방식

  • 입력 1998년 6월 2일 19시 54분


우리나라 제과 역사와 성장을 함께 해온 해태그룹의 공중분해는 지나치게 타인자본에 의존한 기업확장이 왜 비판받는지를 결과적으로 잘 설명해준다. 또 해태그룹 해체과정에서 나타난 채권은행단의 선택은 기업의 방만한 경영책임을 국민부담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성장을 구가하던 해태그룹이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80년대 들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부터였다. 대부분의 재벌그룹이 그랬듯이 해태도 과다하게 외부자금을 차입해 전자와 중공업 등 이질적인 사업에 투자했고 그것이 화근이 됐다. 특히 단기간에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면서 은행보다 차입이 손쉬운 종금사에 의존한 결과가 오늘의 비극으로 나타났다. 자기자본 비율을 높여 재무구조를 견실하게 하라는 국민적 요구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채권은행단의 처리방식도 문제다. 채권은행단은 크게 세 방향에서 해태문제를 다뤘다. 제과 등 주력사들을 외국회사에 매각해 그 비용으로 빚을 갚고,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며, 그래도 모자라는 나머지 빚은 채권행사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탕감해 주는 빚의 규모가 무려 8천억원에 달한다.

외국에서도 은행이 부도기업의 채권을 탕감해 주는 일은 흔하다. 부실한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전적으로 은행의 손실로 한정된다. 우리나라처럼 구조조정을 앞둔 은행이 기업의 빚을 떠안아 그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데 국민의 세금을 퍼부어 주는 일은 없다. 현시점에서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처리방식은 앞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우려된다. 방만한 경영의 뒤치다꺼리를 언제까지 국민이 도맡아야 하는가.

또 하나, 해태그룹의 파산은 협조융자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경고한다. 금융권은 작년 11월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해태그룹에 협조융자를 실시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정부는 시장경제 논리를 무시한 채 기업도산으로 파생될 정치적 손실에 관심이 더 컸다. 그 결과 국민부담만 더욱 커졌다. 협조융자를 걱정하는 것은 바로 해태그룹 같은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협조융자는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채권은행단의 해태그룹 처리방식은 ‘비정상적’이다. 답답한 것은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관치금융의 구습에서 벗어나고 은행이 무책임한 자금집행을 중단하며 기업이 방만한 사업확장을 자제할 때 답답증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