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 56/軍개혁]이양호 국방-육군실세 암투

  • 입력 1998년 6월 1일 07시 29분


공사 8기 출신인 이양호(李養鎬)씨는 94년 12월23일 이홍구(李洪九)내각의 출범 때 합참의장에서 국방부장관으로 직행했다.

이장관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이었지만 그의 장관 재임 1년10개월은 육군과의 최대 갈등기였다.

이장관은 부임 3개월만인 95년 3월25일 대장진급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4월 정기인사를 보름 앞당겨 실시한 것이었다.

해군참모총장에 안병태(安炳泰·해사17기)작전사령관, 1군사령관에 오영우(吳榮祐)교육사령관, 2군사령관에 조성태(趙成台·이상 육사20기)국방부정책실장이 각각 임명됐다.

인사내용이 발표된 당일 낮 국방부내 김동진(金東鎭·육사17기)합참의장실.

점심을 함께 한 뒤 차나 한잔하자며 합참본부장(중장)들을 방으로 데려간 김의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그래, 그것이 비행기안에서 결재받을 사항이야. 비행기나 몰던 사람이 육군에 대해 뭘 안다고…. 한지붕 아래 있으면서 인사내용도 알려주지 않고 혼자 발표해.”

합참 고위간부들은 육군의 최고 실세인 김의장의 거친 말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

이장관은 인사 발표 하루 전인 3월24일 해사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진해로 가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수행하면서 대통령 전용기에서 대장인사안을 결재받았던 것.

그러나 김의장이 화를 낸 진짜 이유는 두번이나 이장관을 찾아가 진급을 강력히 추천했던 김형선(金炯璇·육사19기)육군참모차장의 대장진급 탈락이었다.

이장관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하나회를 수십번 척결해도 육군의 인사개혁 없이는 또다른 인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군부의 막후실력자인 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 육군의 실세들인 김동진합참의장과 윤용남(尹龍男·육사19기)육참총장 등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계기가 됐다.

김의장은 중장 후속인사에서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이장관이 조성태정책실장 후임으로 합참의 K본부장을 요구했지만 ‘합참에 필요한 인물’이라며 냉정하게 거절한 것.

이장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워싱턴에 무관(武官)으로 나가있던 박용옥(朴庸玉·육사21기)소장을 정책실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군사령관 진급 1순위로 통상 중장이 임명됐던 직책이었다.

육군의 재반격은 그해 10월11일 가을 정기인사에서 이뤄졌다.

이장관은 직속참모인 국방부 인사국장 이연우(李淵雨·육사22기)소장을 유임시키겠다고 윤육참총장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육군은 이소장을 전역대기명령이나 마찬가지인 ‘국내연수’로 발령내고 후임에 P소장(육사24기)을 임명했다.

이장관의 거센 질책에 육군은 “실무자의 단순착오였다”는 해명과 함께 이소장의 인사를 취소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

96년 3월 장성인사 시기가 다가왔다.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은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장성(張城·육사18기)대장의 후임. 재임기간 2년이 된 만큼 장부사령관은 관례에 따라 교체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장관은 게리 럭 연합사령관이 그해 6월 임기가 끝날 예정이어서 연합사 수뇌부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으로 장부사령관의 임기를 6개월 연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사가 나기 며칠 전 윤총장은 장관실에 들러 장관의 고유권한인 대장인사안을 내놓았다. 이장관은 육참총장의 권한을 벗어난 행동에 “육군안으로 알테니 놓고 가라”고 차갑게 대했다.

순간 윤총장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이장관과 육군의 갈등은 이미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던 셈이었다.

이 무렵 이장관과 권안기부장의 관계는 어땠을까. 군 정보소식통의 설명.

“처음에는 관계가 좋았습니다. 권부장 입장에서 볼 때 육군보다는 인맥이 거의 없는 공군 출신을 장관에 앉혀놓으면 훨씬 군부를 통제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권부장이 오히려 김의장 등 육군 수뇌부에 ‘장관에게 잘하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권부장이 국방부의 전력증강사업 관계자들을 불러 보고도 받고 고위장성들이 외박을 나가 권부장에게 인사다닌다는 말을 듣고 이장관이 내부단속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장관은 권부장의 인사청탁을 점차 뿌리치며 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두사람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파국을 맞게 된 것은 95년 말 검찰의 군수비리 수사가 계기가 됐다.

이어지는 군 정보소식통의 설명.

“군수비리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이장관이 권부장의 율곡비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첩보가 안기부에 입수됐습니다. 그러자 권부장은 ‘이사람, 날 보호해줄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판단하고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96년 초여름 국방부장관실의 여비서가 바뀌었다. 주변에는 여비서가 결혼을 위해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그녀가 권부장에게 이장관의 동정을 몰래 보고하다 장관 측근에게 들킨 것.

이장관의 충격은 대단했다. 합참의장 시절 여군 하사로 의장실에 근무했고 전역한 뒤에도 장관실에 데려갈 정도로 믿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이장관의 처신도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육군을 견제하겠다는 생각은 좋았지만 그를 뒷받침해줄 조직이 없었던 것. 이 때부터 이장관은 끊임없는 도청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그해 7월 말 전방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장병 60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하자 이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8월 개각에서 유임된 이장관은 대통령의 신임에 자신을 얻어 가을 정기인사에서 육군 인사개혁을 위한 승부수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인사 복안은 문민군부에서 새 인맥을 형성해온 김의장과 윤총장을 전역시키고 유력한 육참총장 후보인 도일규(都日圭·육사20기)3군사령관을 한직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장관은 도사령관 대신 인맥형성과 거리가 멀고 후배들의 평이 좋은 호남(전북 익산)출신 오영우1군사령관을 육참총장에 기용하기로 결심했다.

이 구상은 봄 인사 때 이미 대통령의 구두승인을 받아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가을인사를 앞두고 이장관에게 인사안을 새로 짜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장관은 합참의장에 장성연합사부사령관, 육참총장에 조성태2군사령관, 연합사부사령관에 오영우1군사령관 또는 도일규3군사령관을 임명하고 김의장과 윤총장을 전역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새 인사안을 마련했다.

이장관은 권안기부장의 ‘촉수’를 피하기 위해 청와대에 ‘사전예약’을 하지않고 대통령 결재를 받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서실장에게도 알리지 않고 대통령을 독대(獨對)할 수는 없었다. 10월 초, 이장관은 주변에 “안경을 맞추러 간다”고 말해놓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알았으니 놓고 가시오”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김대통령의 돌연한 태도변화를 이장관 측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장관이 대통령에게 인사안을 보고하기 전에 권부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무사를 통해 이장관의 인사안을 권부장이 미리 알아냈던 모양입니다. 권부장은 대통령을 만나 ‘각하, 이양호 그 사람 큰일 낼 사람입니다. 곧 대장 인사안을 갖고 들어오겠지만 아마 육참총장에 조성태대장과 합참의장에 장성대장을 임명하는 내용일 겁니다. 그가 야심을 품고 충청군맥을 형성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한 것으로 나중에 전해들었습니다.”

사조직 척결을 최대 치적으로 생각했던 김대통령이 그런 보고를 받았다면 차가운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조대장은 충남 천안, 장대장은 이장관과 같은 충북 청주 출신이었다. 인사안을 올리고 나서 보름이 지나도 청와대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0월17일 이장관이 94년 합참의장 재직시 군사기밀인 공군 장비구매계획을 무기중개상에게 누출시켰다는 내용의 폭로를 국민회의가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청와대에 입수됐다.

김대통령은 곧바로 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장진급인사명단을 받아적도록 했다.

“합참의장에 윤용남육참총장, 육참총장에 도일규3군사령관, 1군사령관에 이재관(李在寬·육사21기)육참차장, 2군사령관에 김진호(金辰浩·학군2기)1군부사령관, 3군사령관에 유재열(劉在烈)군수사령관, 연합사부사령관에 김동신(金東信·이상 육사21기)합참작전본부장.”

인사발표 한시간 뒤 이장관은 전격 해임됐다. 후임장관은 김동진합참의장이었다. 일주일뒤 이전장관은 수뢰건으로 구속됐다. 제거대상이었던 육군 출신들의 철저한 역습이었다.

하나회 숙정이 구 정권에서 물려받은 군맥과의 절연(絶緣)작업이었다면 이장관의 몰락은 문민군부 실세들 사이에 군권장악을 놓고 벌어진 ‘별들의 전쟁’이었다.

〈황유성기자〉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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