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전금순/『구멍난 운동화 조금 더 참으렴』

  • 입력 1998년 5월 25일 07시 20분


▼ 속깊은 아들에게 ▼

중 3짜리 큰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꼭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비가 온다면 우산만 챙겨가면 되겠지만 큰 아이에겐 언제부턴가 준비물이 더 생겼다.

지난 겨울 아들이 운동화를 사야겠다는 말을 하기에 조금만 더 신거라 하곤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눈이 오는 날이면 양말을 한 켤레 가방에 챙겨가는 것이 아닌가. 교실 바닥이 많이 차가운가 보다 하고 두 켤레를 빨아보니 모두 한쪽 똑같은 자리의 때가 지지 않는 것이었다.

사내아이라 그런가….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려 비가 오는 날이면 양말의 때가 더욱 많았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왔는데 축구를 했니”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머뭇거리던 아들은 그제서야 운동화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났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뭐라 할말을 잊었다. 묵묵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로 사 달라고 떼쓰지 않고 터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는지 기특하기도 하고…. 책상정리 않고 다닌다고 야단친것이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아이 앞에서 부끄러워 혼났다.

눈이 쌓였을 땐 괜찮았는데 눈이 녹으면 발 뒤꿈치를 들고 물을 피해 다녔단다. 그러다 비가 오면 양말 위에 비닐봉지를 덧신고 고무줄로 내려오지 않게 조인 다음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했고 벌써 여름이 다가오건만 아이들 운동화 값도 만만치 않다. 싸구려는 얼마되지 않아 쉽게 떨어지고 유명 상표의 운동화를 사자니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오늘밤은 별 한점 없이 캄캄하다. 혹 내일 비라도 오지 않을까. 승대야 조금만 참으렴. 우리라고 만날 쪼들리기만 하겠니. 그러면 네가 원하는 미니카세트도 사주고 컴퓨터도 꼭 사줄게.

전금순(충남 공주시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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