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선대인/16년만에 갚은 「빚 유산」

  • 입력 1998년 5월 7일 20시 05분


“저승에서나마 아버님이 마음의 빚을 떨치고 편안한 어버이날을 맞기를 빕니다.”

PC통신 하이텔 플라자난에 40대의 이모씨가 올린 ‘아버님의 유산’이라는 글이 어버이날을 맞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6년전 충남 홍성군. 사업실패 후 다방을 지어 재기하려던 부친이 돈이 달리자 이씨는 마을선배로부터 돈을 꾸어다 부친에게 주었다.

그러나 성급한 빚쟁이들 때문에 이씨가족은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떠나 전남 화순에 정착, 온갖 고생을 다했다.

지난해 8월. 부친이 아들 집에 다녀가던 길에 윤화(輪禍)로 갑자기 숨지자 이씨는 며칠 밤을 뒤척였다.

“생전에 빚을 갚아야 되는데…”하며 입버릇처럼 되뇌던 부친의 마음고생을 풀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때문.

91년 산업재해로 경추골절을 당해 1급장애인이 된 이씨와 중증 심장질환자인 그의 아내. 몇 푼 안되는 생활보조금과 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2백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11월말. 아내는 3년동안 몰래 부어온 적금 2백만원을 이씨에게 내밀었다.

부부는 다음날 아침일찍 귀향길에 올랐다. 죄책감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던 고향땅. 반나절을 수소문한 끝에 이씨부부는 간신히 고향선배를 찾아냈다.

빚때문에 부담스러워 할까봐 예비군훈련장에서 마주친 이씨를 애써 못본 체 하던 선배앞에서 이씨는 참았던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16년전의 빚을 이자 한푼없이 이제야 갚습니다.”

사연을 듣게 된 고향선배는 한사코 돈을 받으러 들지 않았다.

“이 돈을 형님이 받아야 저세상에 계신 아버님 마음도 편하실 겁니다.” 그제서야 돈을 받아 든 선배도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의 저녁놀을 뒤로 하고 돌아온 이들 부부는 다음날 부친의 묘를 찾아 큰절을 올렸다.

〈선대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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