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상원/미래지향적 방송법을 만들려면…

입력 1998-05-06 19:56수정 2009-09-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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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인 국민회의가 방송법안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통합방송법 제정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법안의 핵심적 관심사는 아마도 ‘시민의 공적 공간으로서의 방송’인 것 같다. 이는 분명히 우리 방송이 추구해야 할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법안에는 재고되어야 할 몇가지 문제가 있다. 두가지만 제기한다.

▼ 與측 법안 제고돼야 ▼

첫째는 방송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관련된 문제다. 방송위원회의 권한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다. 국민회의 법안에 따르면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업자의 허가권, 프로그램의 정정 및 중지권, 범칙금 징수권 그리고 방송광고 매출액의 5% 이내에서 기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지난날의 공보처 기능에 플러스 알파가 된 막강한 권한이다. 특히 방송위원회가 기금 징수 및 관리 운용권까지 소유한다는 것은 깜짝 놀랄 만한 발상이다. 방송위원회가 기금을 징수하여 자신의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은 더욱 온당치 않다.

방송위원회도 견제를 받고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방송위원회와 같은 규제위원회의 경우 이에 대한 견제는 인사와 예산을 통해서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위원 임명의 인준 및 위원회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의회의 견제를 받는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마련한 새 법안은 방송위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느라 행정부나 의회와 멀면 멀수록 좋다는 식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문제는 방송위원의 수다. 이 안에 따르면 모두 14명의 위원을 두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임위원은 4명이다. 한마디로 너무 많다. 정부도 그렇고 온 나라가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는데 14명은 너무 많고 한가하기 이를 데 없는 숫자다.

새 위원회는 5명 정도의 상임위원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비상임의 경우는 책임의 한계가 모호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위원 및 위원장도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가 청문회를 거쳐 인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는 정부가 위원장을 내정하고 위원들의 호선이라고 말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은 이제 그만두자.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둘째는 이 방송법안이 현재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과 ‘디지털 시대’라는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 않다. 그 예가 위성방송과 관련된 조항들이다. 이들을 보면 오늘날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방송 위성과 통신 위성을 구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 조항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법안은 국내 위성과 외국 위성을 구분하고 외국 위성을 이용하는 자의 위성방송사업 진입을 막고 있다. 오늘날 방송 위성과 통신 위성을 구별하고 또 국내 위성과 외국 위성을 차별해 진입을 막는 예는 세계적으로 없다.

지금 우리는 소프트웨어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드웨어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방송법은 좋은 프로그램을 그 목적으로 해야 한다. 좋은 위성을 갖기 위해 방송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위성의 국적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 방송-통신위성 구별말자 ▼

방송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국민회의의 안과 같은 강화는 또 하나의 공룡기관을 낳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시민의 공적 공간으로서의 방송’ 역시 좋다. 그러나 그 공간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어야 하고 실용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현재 세계 방송분야에서는 질서재편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열린 방송법을 만들어야 한다.

임상원(고려대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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