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⑭/예은청소년문화쉼터]결손가정 아이들 사랑

  • 입력 1998년 4월 20일 09시 28분


코멘트
난 만날 집에 혼자 있기 싫어/만날 밖에서 생활합니다/밖에서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사람들이 사라지고/행복한 집으로 들어갔을 때/난 외롭게 집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난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집에 혼자 있으면 어렸을 때 엄마와 집에서/쎄쎄쎄하던 그 행복한 기억이 눈앞에 빙빙돈다(예은청소년문화쉼터에 다니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의 시 중에서).

경기 안산시 와동 ‘예은 청소년문화쉼터’.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찾아와 집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가슴에 채워가는 곳.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편부 가정의 자녀. 가난과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못한 엄마가 집을 나갔거나 일찍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깨끗한 옷을 차려 입혀줄 사람이 없다.

늘 배고프고 지저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때가 되면 밥을 차려먹고 얼굴이 더러워지면 세수를 해야 한다는 것부터 가르친다.

강명순원장의 말.

“처음 쉼터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엄마’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요. 집을 나간 엄마가 미우면서도 그리움을 견뎌내기 힘든 거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저를 ‘엄마’라고 부르게 했어요.”

현재 예은청소년문화쉼터 식구들은 7명의 초등학생과 5명의 중학생, 그리고 일곱살배기 남녀어린이 2명.

강원장을 비롯한 2명의 상근교사와 3명의 자원봉사 교사가 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방과 후에 찾아오지만 미취학 아동 2명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

쉼터의 아이들은 모두 자유롭다.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고 시끄럽다고 야단치는 사람도 없다. 틀에 맞춘 교육프로그램도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는 아이도 있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녀도 있다. 배가 고프면 부엌에서 간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전혀 통제를 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그야말로 엉망이더군요. 그러다가 피아노나 컴퓨터를 가르쳐달라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차분해졌어요.”

부활주일을 며칠 앞둔 9일에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세족식’을 가졌다.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준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자는 취지. 실제로는 이를 핑계로 아이들의 더러워진 몸을 닦아주기 위해서였다.

세족식을 하면서 아이들은 찰흙을 밟아 발모양의 본을 뜬 뒤 여기다 물감을 칠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찰흙과 물감은 아이들이 더러운 손발을 창피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사들의 배려였다.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 스스로 요리를 만드는 시간. 이날은 수업이 일찍 끝나서 학교에서 점심급식을 하지 않아 아이들이 점심을 굶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아이들이 집에서도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

“엄마전도사님, 내가 얼마나 부침개 잘 뒤집는지 보세요.”

“정미는 내가 만들어 놓으면 먹기만 해요.”

얼굴에 잔뜩 밀가루칠을 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직접 요리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오전10시부터 두시간 동안은 이 지역 문맹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학교’가 열린다. 어릴 적 배움의 기회를 놓친 주부들은 이곳에서 한글과 덧셈 뺄셈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기초지식을 배운다.

강원장이 안산에 예은청소년문화쉼터를 개설한 것은 지난해 10월.

강원장이 몸담고 있는 선교단체인 ‘부스러기 선교회’는 3억원의 기금을 마련, 이 지역에 결손가정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모금된 기금은 9천만원 가량. 강원장은 이 대안학교 설립의 준비작업으로 쉼터를 개설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은 자칫 분노의 출구를 사회로 돌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가정의 따스함을 맛볼 수 있도록 울타리를 제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예은청소년문화쉼터 연락처 0345―493―8213

〈안산〓홍성철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