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일수/교통부문 투자 거품뺄 곳 많다

  • 입력 1998년 4월 16일 20시 29분


국제통화기금(IMF)위기가 시작되면서 한가했던 도로가 다시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벌써 위기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한국인의 냄비 기질이 다시 도진 듯하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교통 문화와 교통시설 사업에는 거품이 많았다. 우리는 졸부가 허세를 부리듯 허영 가득한 자동차 문화를 만끽해 왔다. 지난 15년간 우리의 실질 국민소득은 약 6배 증가했다.

▼ 우선순위 전면 재검토 ▼

그러나 휘발유 가격은 95년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81년 ℓ당 1천4백24원이었던 것이 96년에는 6백44원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 가격은 북해 유전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를 생산하는 영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그로 인한 과소비의 단면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연평균 주행거리는 2만5천㎞로 일본의 1만1천㎞, 미국의 1만8천㎞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1천㏄이하의 경승용차 보급률이 이탈리아 38.7%, 일본 15.7%, 영국 8.4%인데 비해 한국은 4.6%에 불과하다.

거품의 상징은 국제 교통에서도 엿볼 수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만달러였을때 1백만명당 해외여행객수를 보면 한국(95년)이 일본(83년)의 2.6배였다. 그동안 세계화의 구호아래 허례허식 낭비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 일단을 보여준다.

최근 IMF구제금융의 충격은 교통부문에도 적지않은 변화를 초래할 듯하다. 연구기관들의 예측에 의하면 향후 2년 정도는 상당 수준 부풀어 있던 교통 수요가 감소 내지 정체될 전망이다. 따라서 교통시설 투자의 축소와 연기 등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간접자본(SOC)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GNP에 대한 SOC의 비율이 42%에 불과해 영국 114%, 독일 91%, 미국 73%, 일본 61%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IMF시대에도 우리의 생산기반과 경제성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SOC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다만 IMF시대에는 SOC투자에 있어서도 과소비나 허영과 결별하고 긴축과 내핍을 도모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신규 사업보다는 우선적으로 기존 시설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하는 방안이 철저히 강구돼야 한다. 교통세 인상, 교통서비스 요금의 적정화, 민영화 등에 의해 운영의 효율성을 증진함으로써 신규시설 투자소요를 그만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각 교통시설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 투자 재원의 배분 문제등을 검토해 정치적 전시성 성격이 강한 사업은 과감히 취소 축소 지연시켜야한다. 또 분산 투자보다는 꼭 필요한 부문에 대한 중점지향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민자유치사업의 경우에도 재정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항만의 경우 보통 40∼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구∼대동 고속도로는 24%, 경인운하는 13%, 무안국제공항은 38%, 경전철의 경우에는 30%이상의 정부지원이 있어야만 사업추진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과연 비용 효과적이고 국가지원의 활용면에서 긴급히 필요한 사업인지 엄밀한 재검토가 있어야겠다.

▼ 전시성사업은 축소해야 ▼

경인운하사업, 가덕신항을 비롯한 7대 신항만사업, 동서고속철도, 지방공항,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하철, 경전철 등의 민자유치사업들 중 재정긴축의 기조하에서도 재정지원을 계속 할 필요가 있는 사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불필요해졌거나 필요 이상으로 규모가 커진 사업에 대해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무리하게 원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와 공기업은 예산확보의 수단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봐야한다.

IMF시대에는 기존의 틀로부터 탈피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케인스의 지적처럼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전일수 <교통개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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