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원홍/통일운동가의 눈물

  • 입력 1998년 4월 10일 19시 57분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이 그리워 그 쪽 방향으로 목을 누인다고 했다(수구초심·首丘初心).

북녘 땅 고향을 떠나온지 53년. 올해 66세인 백기완(白基玩)통일문제 연구소장은 올해 1백세의 어머니를 그리며 지난 1일 통일부에 방북허가 신청을 했다. 65세이상의 이산가족이 북한의 신변안전보증 초청장을 받으면 무조건 방북을 승인한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된 직후였다. 백씨의 고향은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

“열세살 때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떠나왔지요. 이렇게 무사히 살아있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것을 알려야할 텐데…. 인간이 백살을 넘게 살기는 힘들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백씨는 방북 신청서에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 ‘대륙’을 어머니에게 전해주겠다고 밝혔다. ‘대륙’은 만주지방을 토대로 전설의 왕국 병사와 억센 처녀의 사랑과 헤어짐을 그린 작품. 고향 밤길을 떠날 때 힘을 내라며 어머니가 들려준 전설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진 시나리오는 북으로 가지 못한채 남쪽에만 머물게 됐다. 9일 오후 통일부로부터 백씨의 방북불허 통보가 전해졌기 때문. ‘신변안전보증’ 초청장을 첨부해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하는 적법절차를 밟지 못했다는 것.

“북한의 초청장을 받으라는 것은 결국 북한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 갈 수 있다는 뜻인데 몇명이나 가능하겠습니까. 가족끼리 만나는 것을 양측이 불허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실제절차에서 가로막더라도 ‘상징적인 허가’조치는 있어야하잖습니까….”

백씨는 10일 경제난으로 문을 닫은 서울 동숭동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홀로 눈물을 글썽였다.

“30년동안 통일운동을 해왔지만 어머니 생사도 모르다니 기가 막힙니다….”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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