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재/포철의 이상한 주총

  • 입력 1998년 3월 19일 21시 12분


17일 열린 국내 최대의 공기업 포항제철 주총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지켜봤다면 참으로 이상한 풍경이었을 법하다.

김만제(金滿堤)전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주총 초반은 ‘잔치’ 분위기였다. “포철은 작년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7천2백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상최고인 20%의 배당을 주주들께 돌려드리게 됐습니다.”

우수한 경영실적 보고에 대해 참석자들도 환호했다. “이렇게 훌륭하게 회사를 운영해주신 회장 이하 경영진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포철을 잘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환호도 잠깐. 곧이어 김회장은 “일신상의 일로 회장직을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더 놀라운 것은 회장이 사퇴한다는 데도 아무런 술렁거림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 그때까지의 격려와 찬사가 한순간 무색해지고 만 것. 그 누구도 ‘훌륭한 경영자’의 사퇴를 만류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동안 민간기업에 대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액 주주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해왔다. 그러나 이날의 주총에서 정부는 스스로 자신의 말을 정면으로 뒤집고 말았다. 물론 회장 교체에 대해 정부와 포철은 김전회장 재임시 여러 잡음에 대한 ‘문책’이라는 주장을 편다. 아무리 명분이 그럴듯해도 정치논리의 개입이란 나쁜 선례를 또 남겼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더한 문제는 회장 교체 자체가 아닌 그 과정에 있다. 포철은 공기업이기 전에 주식의 33%를 일반인이 소유한 국민기업이다. 그런데도 회장결정은 위에서 내려온 “불가”라는 지시 한마디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부와 포철은 “이제야 전문경영인체제로 복귀했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포철 직원들은 ‘5년후에는 또 어떻게 될지’를 걱정했다.

이명재<정보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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