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주현/「DJ납치 진상」보도를 보고

  • 입력 1998년 2월 19일 20시 05분


25년 전의 빛바랜 사진이 19일자 아침 동아일보 1면에 실렸다. 입술이 부르튼 채 울고 있는 그는 현재의 대통령당선자다. 그 옆에는 ‘KT사건 관여인사 일람표’라는 것이 실려 있다. 이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관여한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포상한 내용들이다. 해외정보수집을 해야 할 정보요원들에게 정적을 제거하는 일을 시키고 입막음을 위해 특별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는가. ▼ 권력층 진실은폐에 충격 ▼ 김대중씨가 서울자택으로 돌아온 직후 납치사건에 대한 특별수사본부가 요란하게 설치되었으나 1년후 수사를 중지했고 또다시 1년후에는 수사를 종결했다. 문민정부에서조차 광주학살에 대해 불기소처분이 있었던 것을 보면 유신 당시 검찰이 그런 처분을 한 것은 그럴 법한 일이다. 오히려 사건 직후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물론 이를 빗대어 대선 전에 김대중씨 비자금사건을 수사하지 않겠다고 한 검찰의 결정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선직전이라는 시점의 미묘함 때문에 국민의 선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여론이 적지 않았으므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법조계의 부조리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있는데도 검찰이 수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조의 생명인 공정성이 유지되려면 애초에 이런 일 자체가 없어야 했겠지만 이미 이런 사태가 벌어진 바에는 한점 의혹없이 사실을 밝혀야 하고 밝혀진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울 것은 응분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 국민은 지금도 여전히 억압과 특권과 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유신시절이나 5공시절처럼 특정권력이 온 나라를 전면적으로 억압하고 있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국방부와 안기부 예산은 베일에 싸여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사법부와 법질서 위에 존재하면서 형식상의 재판이 끝나면 그 뿐, 처벌은 받지 않고 있다. 노골적인 공작정치조차도 비단 73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7년 대선직전에도 존재했다. 73년 사건관련자들은 지금까지도 함구하고 있지만 97년에는 안기부의 내부고발자가 있어 공작정치가 어느 정도 차단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선 전 한 정치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정권교체의 의미가 있다면 안기부 파일이 햇빛을 보는 것이다. 햇빛을 봐야 곰팡이가 없어진다.” 73년 김대중납치사건 전말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 안기부 파일이 햇빛을 보고 곰팡이가 없어지는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 비단 안기부 파일만이 아니라 재정경제원이나 국방부를 비롯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법조계와 세무서 등 사회 각계의 눅눅하고 음습한 토양에서 독버섯처럼 자라 사회 전반에 모두 퍼져버린, 그래서 이제는 죄의식조차 없고 거리낌없이 관행으로 굳어진 억압과 특권과 부패라는 이름의 크고 작은 곰팡이들이 햇빛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 「음지의 파일」 이젠 공개를 ▼ 수십년간 굳어진 사고방식이나 행동양태가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의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과 보수언론, 해바라기 정치인과 지식인들도 있다. 많은 국민도 수십년 동안 잘못된 권력자들에 의해 덧씌워진 ‘그럴 듯하고 힘있는 곳에 붙어라. 그러기 싫으면 외면하고 잊어버려라’는 주문에서 아직 완전히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사회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그리고 꾸준히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쓸데없는 곳에서 지쳐버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결코 마감할 수 없을 것이다. 박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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