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뭣하자는 국회인가?

  • 입력 1998년 2월 11일 19시 51분


국회가 계속 표류하고 있다. 지난 2일 개회한 이래 하루도 제대로 굴러간 적이 없다. 의사일정도 합의하지 못해 의장직권으로 정했지만 그것마저 지키지 않았다. 여야 힘겨루기로 공전(空轉)과 파행만 거듭하다 이제 회기를 겨우 사흘 남겨놓게 됐다. 이 중대한 시기에 국민대표기관이라는 곳이 도대체 뭣들 하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급해지자 여야 수뇌부회담이 열렸으나 눈앞의 현안에 대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여야 수뇌부는 3당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으로 6인회의를 구성해 현안을 협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수뇌부가 합의하지 못한 것을 6인회의가 타결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은 여야 총무회담 합의사항을 뒤집은 전례도 있다. 국회표류가 장기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국회에 상정된 안건에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서의 국제적 신뢰 제고나 새 정부 출범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런 의안들을 조속히 처리하지 못하면 국제신용이 훼손되고 차기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국회파행이 정정(政情)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큰일이다. 국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뒤바뀐 여야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소수여당의 처지도 잊은 듯 우쭐거렸다. 어떤 의원은 “야당 연습하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는 따위의 원내발언으로 한나라당을 자극했다. 대야(對野)창구마저 대화를 게을리하거나 야당에 고압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직도 대선(大選)승리에 취해 그렇게 자만해도 좋을 때인가. 한나라당은 여야 수뇌부회담 직후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 불참했다. 그들이 여당 시절에 그토록 비난했던 과거 야당의 행태 그대로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제출한 인사청문회법안 단독처리 절차에 들어갔다. 옛날 버릇을 못 버린 셈이다. 특히 총무회담 합의를 부총무단이 거부했을 정도라면 과연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당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 야당과 ‘다(多)채널 대화’를 활발히 가져야 한다. 한나라당은 국정경험을 가진 원내다수당에 걸맞게 성숙해져야 옳다. 여야는 남은 사흘이라도 최선을 다해 IMF체제나 새 정부 출범과 유관한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바란다. 사흘로 모자란다면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어렵게 이뤄진 노사정(勞使政)합의가 국회 파행기간 중에 흔들리고 있는 것은 시사적이다. 국회 혼미가 길어지면 사태는 훨씬 나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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