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관/대통령들의「민원」과 「봐주기」

  • 입력 1998년 2월 3일 20시 28분


3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주례회동후 발표한 합의문에는 뜻밖의 내용이 포함됐다. 5개항 합의문의 마지막에 들어간 ‘김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존치를 원했으며 김차기대통령은 그 의사를 정부조직개편심의위에 전달키로 했다’는 대목이 그것. 문면상 김대통령의 ‘민원성’요청을 김차기대통령이 ‘봐주듯’ 받아들였다는 느낌을 준다. 정개위가 폐지키로 결정한 해양수산부의 존속은 사실 김대통령이 유달리 집착해온 사안이다. 이날 회동에 앞서 참모들간에는 “(김차기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양수산부 존속을) 요청했다는 기록만이라도 남기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거점인 부산에 대한 배려가 작용한 것이다. 사실 해양수산부 폐지는 한나라당은 물론 국민회의에서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정개위의 논의과정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 표결로 폐지방침이 확정됐다. 이런 상황이니 해양수산부 폐지를 두사람이 재고키로 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문제는 부처 존폐문제, 나아가 국가의 해양수산정책에 관련한 중대사안을 둘만의 회의에서 결정해도 괜찮은지 하는 점이다. 특히 현직대통령이 차기대통령에게 정부개편의 문제점에 대한 전반적 의견제시를 하고 나름의 개선안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기보다 한 부처의 존폐건만 ‘로비’한 듯한 모습이 되었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러잖아도 정부개편을 둘러싸고 “모부처는 치열한 로비공세로 살아남았다”는 등 소문이 무성한 터다. 얼마전 김대통령의 측근이 김차기대통령을 만나 해양수산부 존속을 요청했을 때도 “만나서 할 얘기가 그런 로비였느냐”는 지적도 적지않았다. 새정부 공식기구의 결정사항을, 그것도 국회 논의에 앞서 두사람의 회의로 뒤엎은 것을 큰 합의인 양 발표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이동관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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