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코미디극「강거루군」,대졸 취업난 풍자

  • 입력 1998년 1월 19일 20시 59분


북한산에 신사복 입은 ‘등산객’이 늘고 있다. 대학졸업자가 취업을 하지 못해 재수, 삼수한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인간소극장에서 공연중인 극단 차이무의 ‘강거루군(群)’은 갈수록 심해지는 대졸 구직난을 쓴웃음과 독한 풍자속에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티켓값과 화려한 무대장치 등 갖가지 거품을 뺀 ‘가난한 연극’을 추구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주인공 강거루. 대학을 졸업한지 4년째. 숱한 입사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의 쓴잔을 마셨다. 그는 여느 대졸 실업자들이 그러하듯 그나마 친구와 후배가 남아있는 학교주변을 맴돈다. 기성세대는 이런 강거루에게 ‘캥거루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미의 주머니안에서 머리만 내민 채 살아가는 캥거루처럼 가정과 학교의 보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종속이라는 의미. 이같은 내용이라면 당연히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예상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풀어주는 대표적인 심리적 방어기제인 눈물을 통해 자신의 불행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연민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강거루군’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 존재를 광대로 만들고 웃어버리는 갈등해소법을 택했다. 그래서 객석에서는 폭소가 끊이지 않는다. 잔뜩 주눅든 강거루의 행동과 그를 학대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절묘한 코미디의 소재로 변해 펼쳐진다. 한 디자인 회사에 원서를 낸 강거루군의 입사면접 장면. “디자인은…예술적 심성과 군인으로서의 패기…용사정신이 필요하단 말이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예술적 영감을 승화시켜서 화랑도의 그 어떤 낭인정신을….” “자네 얼굴을 캐릭터화해서 팬시상품으로 만든다면 어떤 콘셉트(개념)로 디자인해서…베스트(최상) 컨디셔널(조건)하게 메이크(제작)할 수 있을까?” 대학졸업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인 면접관. 군대문화와 외국어 지상주의로 무장한 그들이 시종일관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웃기기 위한 의도적 연출이다. 여기에는 획일적인 사회기준 속에 새로운 세대를 가두려는 기성세대에 대한 독한 냉소가 짙게 배어있다. 강거루는 이러한 불합리한 사회적 질서에 대해 항변의 목소리를 높인다. 면접관의 추궁에 “기성세대는 지금까지 무엇을 잘해왔느냐”고 폭발하듯 대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인 ‘거루’가 ‘돛을 달지 않은 작은 배’라는 뜻을 가졌듯 강거루의 꿈은 사회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음을 웃음속 칼날로 암시하고 있다. 연극 초년생들이 모여 만든 소품이어서 아마추어적인 분위기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극의 희화성을 높이기 위해 사람대신 인형을 사용한 실험적인 기법도 독특하다. 3월1일까지 화∼일 오후 4시, 7시. 02―762―0010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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