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곳에 가고싶다]유연태/황도의 조개껍질 바닷길

입력 1998-01-07 20:44수정 2009-09-2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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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년전 이맘 때. 직장에 사표를 내던 날 칼바람이 머리카락을 곧추세우게 만들었다. 마흔한 살의 가장. 어차피 자유의 삶을 살고자 원하는 바에야 더 늦기 전에 그 황량한 벌판에 나서야 할 일이었다. 사표를 냈다는 일방적 통보에 아내가 조심스레 한마디 던졌다. “당신이 10년동안 나를 밥먹여줬으니 앞으로 10년은 내가 책임질게” 그 말을 가슴에 묻고 집을 나섰다. 아! 사나흘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충남보령 선산의 아버님묘소에 들른 뒤 바다가 그리워 안면도를 찾았다. 피서 때 몇번 와 본 곳이었다. 남단의 영목항에서 날갯짓이 힘찬 갈매기를 만나고 휴양림에서는 하늘로 곧게 뻗은 토종소나무들을 두팔로 껴안아봤다. 안면도를 빠져나오려는 차에 ‘황도’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보리가 익을 때쯤이면 온 섬이 누렇게 보인다는 황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섬이었다. 연륙교를 건너 큰 말 해안에 서자 잔잔한 천수만이 빈 가슴에 가득 들어왔다. 놀랍게도 나는 그날 거기에서 조개껍데기가 가득 깔린 바닷길을 만났다. 밀물때면 바닷물속에 숨어들었다 썰물때면 드러나는 신비의 길이었다. 아마도 황도주민들이 내다버린 조개껍데기가 어느새 그렇게 모여 개펄을 덮은 것일 터였다. 바다로 향한 조개껍데기 길을 걷는 동안 자그락자그락 껍데기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나그네가 길에서 한없이 쉴까봐 이렇게 자극을 주는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길을 지난해 초가을 한번 더 걸었다. 동행한 답사회 회원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청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했다는 황도. 그러나 이제 청어는 사라졌고 조개껍데기만 나그네의 잠든 영혼을 깨워주고 있다. 유연태〈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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