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정은주/사료값에 멍든 농심

  • 입력 1997년 12월 31일 08시 29분


『뭐라고요? 네마리나 죽었다고요?』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김씨아저씨의 소가 네마리나 죽다니. 오랜만에 시골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침통하게 들려준 말씀이었다. 소는 김씨아저씨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송아지를 보는 재미로 어려움도 잊은 채 열심히 살아가는 김씨아저씨네였다. 언젠가 아침 일찍 소가 먹을 꼴을 베러 지게를 지고 가는 김씨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김씨아저씨에게는 소가 유일한 희망이었고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였던 셈이다. 그런 김씨아저씨의 소가 죽다니,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엄연한 현실인 것을….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일은 소가 죽은 원인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면서 치솟는 사료값으로 김씨아저씨네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사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사료값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터무니없이 치솟은 사료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김씨아저씨는 소에게 사료 대신 짚과 호박을 삶아 먹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이처럼 엄청난 일이 생겨났다. 사료 대신 짚과 삶은 호박을 먹은 소들은 점차 여위어가고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네마리 모두 죽고만 것이다. 사료에 길들여진 소들이 먹이를 바꾸자 적응하지 못했던 셈이다. 김씨아저씨로서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죽은 소는 팔지도 못하고 땅에 묻어야만 했다. 김씨아저씨는 네마리의 소를 묻으며 자신의 희망과 꿈도 함께 묻어버린 셈이다. IMF가 뭔지도 모르는 김씨아저씨. 착하게만 살아 왔고 소를 자신의 전부로 생각하고 키워 왔던 김씨아저씨의 눈물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까지 저려오는 아픔을 느낀다. 모두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아픔인 것을…. 사료를 먹고 있는 소를 쓰다듬으시며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의 시름 속에서 암울한 농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정은주(광주 북구 오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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