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황호민/검소한 성탄절

  • 입력 1997년 12월 24일 19시 41분


『아빠, 올해는 크리스마스가 없어요』 저녁식사 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갑자기 묻기에 당황했다. 작년만 해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고 뛸듯이 기뻐했으니 이런 물음이 나올 법도 했다. 가뜩이나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한 텔레비전까지 날이면 날마다 외환위기니 구제금융이니 하며 시끌벅적하니 아이의 눈에는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 모양이다. 해마다 12월이 되기 무섭게 거리를 가득 메웠던 캐럴도 자취를 감추고 교회와 가게마다 치렁치렁 늘어뜨린 색전구의 반짝거림도 눈에 띄게 줄었다. 화려한 성탄절에 익숙한 아이에게 예년과 다른 이맘때의 한산한 거리풍경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져 모두가 아끼는 중』이라고 원론적인 말을 해주었지만 아이는 그래도 크리스마스 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이렇게 어려울 때는 산타할아버지가 꼭 루돌프를 타고 오신단다. 아마 이번엔 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오실 걸』 하고 거들었다. 뾰로통하던 아이의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다소 나라 경제가 힘들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는 배려가 필요함을 느꼈다. 어려운 경제여건에 따른 물가인상 감량경영 등으로 실제생활에서 느끼는 압박은 엄청나다. 물론 최근의 검소한 크리스마스도 어찌 보면 난국을 헤쳐나가려는 굳은 의지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절약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에 의한 것이겠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그대로 실천되는 모습을 보면 이게 바로 우리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가 중심에 있다. 그런 만큼 모두가 나서서 올해의 검소한 크리스마스 정신을 이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황호민(충남 논산시 취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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