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94)

  • 입력 1997년 12월 24일 19시 41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62〉 사람들이 탄 배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서야 나는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방금 흙을 덮은 곳으로 가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철판 덮개가 나타났고, 나는 그것을 들어올렸습니다. 덮개를 들어올리니 그 밑에는 구불구불한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예감을 안고 나는 그 컴컴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아름다운 홀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홀에는 최상급의 양탄자가 깔려있고 벽면은 값비싼 비단으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본 그 아름다운 젊은이는 높은 침상 위에 비스듬히 앉아 천천히 부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 곁에는 온갖 향기로운 화초 다발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지하홀에는 그 젊은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젊은이를 이 지하 홀에 혼자 가두어 놓았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젊은이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나를 보자 그는 파랗게 얼굴이 질렸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나는 공손히 인사를 한 다음 말했습니다. 『제발 안심하십시오. 당신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니 저를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저도 당신과 같은 인간이고, 게다가 꽤 신분도 높은 사람이랍니다』 나의 그 공손한 태도와 말투를 보고서야 그 젊은이는 어느 정도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풀 수는 없었던지 의혹에 찬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왔나요?』 이렇게 묻는 그 젊은이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나는 넋이 녹아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애써 자신을 억제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우연히 이 무인도에 혼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나는 나무 위에 숨어서 내가 지켜본 것을 모두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당신이 반대하시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것은 물론 당신의 시중을 들어드리는 몸종이 되겠습니다. 이 무인도에서 당신을 만나게 된 인연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니까요』 내 말을 들은 그 젊은이는 몹시 기뻐하며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전과 같이 혈색이 돌았습니다. 정말이지 그때 그 기뻐하는 젊은이의 귀여운 모습을 나는 평생토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형제여! 당신을 나에게로 보내주신 것은 자비로우신 알라의 뜻일 것입니다. 저는 반대하지 않을 테니, 부디 내 곁에서 동무가 되어주십시오』 이렇게 말한 젊은이는 나의 손을 잡아 나를 자기 곁에 앉혔습니다. 그 젊은이에게서는 은은한 꽃 향기가 풍겨왔는데,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던지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무인도의 그 비밀스러운 지하홀에서 그 아름다운 젊은이와 단 둘이 살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나는 행복감으로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뛰었습니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