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훈/절도범된 주부의 눈물

  • 입력 1997년 12월 17일 20시 49분


16일 밤 서울 노원경찰서 형사계. 화장지 치약 식용유 간장 등 생필품이 널려 있는 책상 앞에 한 중년 부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지 못한 죄인으로 용서를 빕니다. 제 벌이가 시원찮아 아내가 그만…, 부디 선처를 바랍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42)과 딸(16) 아들(14)을 둔 이모씨(36·노원구 하계동)는 평생 경찰서 문턱에도 가 본 일이 없는 평범한 주부. 아이들이 커가면서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최근 파출부 일을 시작했을 정도의 또순이다. 16일 저녁 평소처럼 평창동에서 일을 마친 그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속에서 집에 설탕이 떨어진 생각이 났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동네 가게보다 10%이상 싸게 파는 대형 할인매장을 이용했던 알뜰 주부 이씨는 월계동 N직매장 앞에서 내렸다. 「설탕이 어디에 있을까…」. 매장을 한바퀴 돌았지만 설탕 코너에는 표지판만 붙어 있을 뿐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물건들이 빼곡이 쌓여 있을 매장의 선반이 듬성듬성했다. 갑자기 밀가루 설탕 등 생필품의 사재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어제 저녁 TV뉴스가 떠오르면서 이씨는 닥치는대로 물건을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화장지, 식용유 2통, 간장 1통, 치약 4개, 비누 4장…. 모두 3만5천8백20원어치였다. 그러나 예상치 않았던 지출이라 지갑에 그만한 돈이 없었던 이씨는 후문을 통해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폐쇄회로 TV를 통해 매장을 감시하고 있던 직원에 의해 곧바로 붙잡혔다. 『설탕 한봉지도 없는 매장을 보니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했어요. 뭔가 사야한다는 생각에 물건을 집어들긴 했지만 돈은 없고… 잘못했어요…』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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