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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7년 12월 12일 2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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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경기장을 지을 돈이 있으면 경제살리기에 돌려야 한다는 강변도 나온다.
월드컵을 반납해야 한다고까지 극언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줬던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경제 한파」로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이다. 그러나 5년후 열리는 월드컵이 우리 경제의 재도약에 전환점이 되리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위기 뒤의 기회」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는 대한축구협회 정몽준회장을 만났다. 자연스레 경제위기가 화두가 됐다. 『현 위기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요. 지금의 위기가 심각하긴 하지만 단기적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일어설 때 우리는 어떤 무엇으로 힘을 결집시켜야 하겠지요』 정회장은 『월드컵 개최는 소모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생산적 축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위기를 타개해 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년여밖에 남지 않은 월드컵 준비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열기가 식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큰 구도에서 봐야 합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제시한 것을 보더라도 단기적이며 1,2년내 반드시 우리 경제가 회생할 것으로 봅니다. IMF는 우리나라의 GNP성장률을 내년 3%, 내후년 5.6%로 제시한 것으로 압니다. 광주민주화운동 탄압 등 대외 이미지가 극히 나쁘고 GNP 대비 외채비율이 52%에 달했던 80년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어요. 일본으로부터 1백억달러의 자금을 받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이듬해인 81년에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것을 계기로 81년 5.5%, 82년 7.5% 등 성장률을 계속 높였습니다. 위기 뒤의 기회는 준비가 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 준비된 무대가 바로 월드컵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판국이라 경기장 건설 등 월드컵 준비에 차질이 예상되고 돈이 돌지 않으면 수익사업 등을 전개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클텐데요.
『당장의 고통 때문에 미래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으로 봅니다. 월드컵 개최의 기본이 되는 경기장 건설은 반드시 추진돼야 할 부분입니다. 서울에 지을 주경기장을 정부와 서울시가 30%씩 부담하고 나머지 40%는 월드컵 관련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으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지방도시의 경우 경기장 건설에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중 5개 도시는 월드컵유치 이전부터 경기장 건설계획이 세워져 추진되는 것이며 자금확보 계획도 서 있습니다. 일부 도시에서 개최신청을 철회할지 모른다는 소문도 있다는데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신청 도시들이 모두 의욕에 넘쳐 있어 어느 도시를 선정해야 할지 되레 걱정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월드컵에 너무 매달리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 그는 국가경제위기에서는 긴급처방도 있어야 하지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며 월드컵이 바로 그것이라 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아직도 월드컵개최로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이 82년 월드컵을 개최할 때 1인당 국민소득이 5천달러가 채 안됐고 언어도 4개어로 갈리는 등 지역간 갈등의 골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을 치른 이후 이러한 갈등이 해소됐을뿐 아니라 국민소득도 거의 세 배나 늘어났습니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에게 경제 사회적으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 주리라 확신합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협력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요.
『최근 아벨란제 회장 등 FIFA 수뇌부의 한국방문은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FIFA수뇌부가 2002년월드컵조직위원회와 축구협회가 유기적인 협조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 것은 반성할 대목이라고 봅니다. FIFA와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서라도 월드컵 관련기관끼리의 협조체제는 긴밀히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내년에 새로운 FIFA회장이 선출됩니다. 새 회장이 2002년 월드컵을 주관하게 되죠. 새로운 리더십과의 우호관계가 절실한 과제입니다. 대선이 임박해 있습니다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2002년 월드컵이 국운상승의 전기가 된다는 점에서 FIFA와의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주초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리는 제3회 대륙간컵 축구대회에 참석할 예정인 그는 FIFA 수뇌부와 집행위원들을 만나 경제위기로 한국이 2002년대회 개최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깨끗이 씻어줄 계획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이나 기업인으로보다는 「월드컵 맨」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요. 월드컵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매달리게 하는 것인지요.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의 눈에 6.25와 88서울올림픽 등 두 가지가 나란히 각인돼 있다고 봅니다. 2002년 월드컵은 이같은 외국인의 시각에 우리의 좋은 면을 더욱 크게 부각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월드컵을 어떻게 치르려 하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긴 안목에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후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년간 월드컵을 위해 일해 왔다고 자부하는 저 자신도 아직 월드컵의 진정한 의미나 파급효과를 잘 모릅니다. 다만 월드컵이 국가의 장래를 새롭게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에서의 일부경기 개최문제가 나오고 남북 단일팀 구성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북한의 태도라고 봅니다. 평양에서 경기가 열린다면 수백만명의 관중과 관광객들이 찾게 될텐데 과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자세와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 2002년까지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먼저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보고 북한의 태도를 보면서 신중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얘기로 돌아가 보지요. 올해 국민은 월드컵축구에 환호하는 것을 거의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본선에서 다시 한국축구의 저력을 과시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본선 조편성은 개인적으로는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팀을 찾아나서기보다는 오히려 강팀들과 만나 보아란듯이 좋은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저는 FIFA가 허용한다면 2002년대회 개막전을 한국과 98프랑스대회 우승국이 서울에서 치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렇듯 자기보다 훨씬 강한 것에 대비해야 발전이 빠르거든요』
―평소 경기장에 관중이 없어 축구열기가 일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 국가대표 프로선수들이 잇따라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도 국내붐 조성에는 악재라는 지적인데요.
『월드컵을 개최할 나라의 축구열기가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고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 원인을 축구장이 모자란데서 찾습니다. 포항이나 광양 등 전용구장에는 팬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다른 곳은 축구를 관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해외진출은 국내축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국가대표팀의 훈련에도 공백을 초래하지만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유럽 등지로 나가 명성을 얻고 선진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대담=이재권 체육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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