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중년 남성들의 자리매김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중년 이후에는 부부의 권력 관계가 흔히 뒤바뀐다. 직장일에 파묻혀 사는 사이에 가정이 아내 중심으로 재편돼 남편들은 가족 대화에 끼여들기도 어렵다. 통장이며 곗돈이며 모두 아내가 주무르는 집안이 많다. 월급봉투 가져다주는 것외에는 다른 집안 일도 할 줄 모른다. 아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속옷과 양말도 못찾는 생활 무능력자다. 이런 판에 직장에서 감원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고물 냉장고 취급을 당하기 알맞다 ▼40대 이상 한국 남성들은 어머니가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철저히 희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그들은 보고 자란대로 어머니 같은 아내가 돼줄 것을 은연중 기대한다. 아내는 그러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자식 기를 동안은 참고 살았지만 「여생이라도 귀찮은 남편없이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만은 틀림없는 현상이다 ▼40대이상 중년남성들은 한 세대만에 이렇게 여성의 모습이 달라진데 대해 심한 갈등과 함께 배신감까지 느낀다. 경제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어머니 세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생존을 영위할 다른 수단이 없었다.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했다. 요즘 아내들은 별도로 돈벌이 수단을 갖고 있거나 알뜰살뜰 모아 남편이 모르는 딴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년 이상 함께 살다 갈라선 부부가 10년 전에 비해 두배 이상 껑충 뛰었다. 사법연감 통계로는 아직도 40, 50대 이혼부부중에서 남편이 이혼을 청구하는 사례가 약간 더 많지만 여성이 청구하는 이혼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중년 남성들은 바야흐로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아내를 소홀히 하고 밖으로 돈 남성들도 반성해야 하겠지만 아내들이 중년이혼으로 위협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남편 길들이기」라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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