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자동차 운행중 기름이 떨어져 조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주유소와 정비업체들이 도로마다 줄줄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가 하나 둘씩 나타나던 초기에는 서비스업체들이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지방노선을 운행하던 자동차가 기름이 바닥나 산중에서 조난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 신문에 「자동차조난」기사가 심심찮게 실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조난사고는 1913년 12월. 이때 서울의 매일신보사 기자 한사람이 마산∼진주간 정기노선 승합차를 시승, 마산에서 진주로 가던 중 고개중턱 험한 길에서 연료탱크에 구멍이 뚫려 휘발유가 다 새나가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그 추운 겨울 밤새도록 혼난 일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시간에 50리 속력으로 화살같이 행하야 마산에서 한 90리 되는 증대라는 고산준령을 요리조리 올라가던 중에 홀연히 지남철에 쇠붙듯이 딱 붙드니 요지부동이라. 운전수는 나려서 죽을 힘을 다 하야 흔들고 미나, 자동차는 고만두고 시동도 못하기에 승객일동은 황망히 그 연유를 운전수에게 물은 즉 운전수는 얼굴과 의복이 기름때에 가마귀같이 검은 자가 되어 두 눈에 흰자위만 반짝거리며 덮어놓고―네 구멍으로 기름이 몽땅 새었시오. 이말을 들은 승객일동이 다시 경황실색하야 급히 차에서 내려본 즉 자동차의 생명이라 할 개소린이 없으니 이는 물고기가 물을 잃고, 나는 새가 공기가 없다 함과 같으니 무인지경 산중에서 어찌 20세기에 리화학상 이용하는 개소린을 이곳에서 구할 수 있으리요. 할 수 없이 엄동설한에 동사가 아니면 아사가 아니면 변사는 면치 못하리라. 막막히 앉아 서로 얼굴만 보니 곧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더라. 이 때 비는 점점 심하게 오고 바람은 우뢰같이 산골을 진동하며 날은 저무러서 어둑어둑한데 잡심과 고민을 겸하여 시시각각으로 공복에 한기가 심하니 흡사 이 양양한 대해에서 폭풍을 만나 무인도에 표착한 듯하더라. 이 때에 승객 다섯 사람 중에 남자는 본 기자 하나이라 할 수 없이 우선 운전수로 하여금 90리 떨어진 마산에 가서 개소린 가져오기를 정하고 장차 밤지낼 계책을 생각하다가 현애절벽으로 깎듯한 산아래 삿갓 엎은 듯한 한 농가가 있기에 눈을 씻고 안절부절 엎어지며 황망히 달려 내려가 주인에게 연유를 말한 후 허락을 얻어 목숨을 구하게 되였더라」.
전영선(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