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나타나는 지역주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한심한 작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자당(自黨) 대통령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지역감정을 자극한 신한국당 김윤환(金潤煥)고문의 『우리가 남이가』 발언은 5년 전의 초원복집사건을 연상케 해 꺼림칙하다. 그러잖아도 각 정당의 상호 비방전으로 진흙탕 싸움판이 돼버린 대선전(大選戰)에 지역감정마저 춤을 춘다면 어찌될 것인가. 관권과 금권의 횡행이 아직은 눈에 띄지 않고 있지만 과거 선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지역감정 자극의 전비(前非)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95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총선거에서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는 「지역등권론」,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핫바지론」을 외쳐 지역구도의 이득을 보려 했다. 그러나 「3김청산」을 기치로 내세운 신한국당의 고위간부가 이번 대선전 들어 처음으로 지역감정을 공개적으로 자극한 것은 「3김청산」 구호를 무색케 하는 중대한 자기모순이다.
세계는 「국경없는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다. 지금의 금융위기도 한보사태 기아사태와 정책실패 등의 국내요인에 의해 시작되고 증폭된 것이 사실이지만 해외요인 또한 경시할 수 없다. 경제현상 하나도 국내만 들여다봐서는 제대로 풀어낼 수 없는 지구화(地球化)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국내에서 지역분열까지 조장하는 것은 시대 역행(逆行)의 망국적 처사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표 얻기가 급하다 해도 지역감정에 불지르는 행태는 삼가야 옳다.
선거는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걸러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선거 때만 되면 지역주의가 활개쳐 국민을 갈등과 분열로 밀어넣고 민의를 왜곡해 왔다. 이런 역기능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지역주의에 힘입어 선거에 이기면 인사나 정책으로 그 빚을 갚기 위해 지역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단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려면 정치인과 유권자가 각성해야 한다. 특히 유권자들은 지역감정에 편승하려는 정치인의 언동에 현혹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정치인을 가려내 심판할 만큼 성숙하고 냉철해져야 한다. 실제로 유권자들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선거운동방식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촉발하면 표가 나온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권자들이 그것을 표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