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하나의 나눠먹기

  • 입력 1997년 11월 13일 19시 52분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민주당 조순(趙淳)총재가 양당 통합과 후보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해 「이―조 연대」를 공식화했다. 이―조연대는 3김청산을 기치로 내걸어 사회 일각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조 연대는 중대한 몇가지 점에서 혼란스럽다. 우선 이―조연대와 DJP연대 사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조연대 협상에서도 정책조정은 거론도 하지 않은 채 자리 나눠갖기부터 서둘렀다. 집권을 위한 연대라면 연대세력이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먼저 제시해야 옳다. 그런데도 그것은 제쳐두고 두 세력간의 자리배분만 합의해 발표한 것은 국민을 도외시한 처사다. 양당이 후보와 총재의 분리 및 당직과 공천의 7대3 배분을 문서로 합의한 것은 또하나의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민주당의 내부갈등이 증명하듯이 이―조연대는 불과 몇주일 사이에 막후에서 급조된 뒤에 수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무엇보다도 이―조연대의 기본방향이 이총재 동생과 조총재 장남의 협상에서 마련됐다는 보도가 놀랍다. 협상의 밀실성 때문만이 아니다. 중차대한 정치문제에 두 사람의 가족이 나섰다는 점이 더욱 개운치 않다.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비난해온 DJP연대 협상도 그런 경로를 밟지는 않았다. 많은 국민은 권력자의 가족과 친인척이 국정에 개입해 빚은 폐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조연대는 3김청산을 내세우지만 몇가지 의문을 남긴다. 우선 인적(人的) 구성에서 신한국당을 사실상 지배하는 5,6공 인맥에 업힐 이―조연대가 과연 당당하게 3김청산을 내세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몇달 전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아래서 후보로 선출된 이총재와 서울시장 시절 국민회의 전당대회에서 『정권교체의 천시(天時)가 왔다』고 말했던 조총재가 3김청산을 외치는 것도 적지않은 국민을 당혹케 한다. 이총재와 신한국당은 「김대중(金大中) 비자금」 의혹과 청와대 국민신당 지원설 등 최근의 굵직굵직한 폭로전을 주도했다. 이총재 지지세력은 경북에서 「03 마스코트」를 두들겨 패면서까지 또 다른 의미의 대결의식을 자극했다. 이것이 3김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정치행태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신한국당은 김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역사 바로세우기」를 부정하고 금융실명제 폐지를 거론한다. 3김을 청산하자는 것인지,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한다. 어쨌든 이―조연대의 출범에 따라 대선판도의 불확실성이 크게 걷히고 3각구도의 틀이 잡혔다. 이를 계기로 대선후보와 정당들은 저질폭로공방이나 상대비방을 그만두고 정정당당한 정책대결을 통해 선거문화를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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