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김순덕/연극사랑의 7가지 이유

  • 입력 1997년 10월 31일 19시 40분


영화구경을 갔다. 삐삐가 부르르 울기에 습관대로 번호만 확인하고 그냥 있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여기는 연극공연장이 아니라 영화관이었다. 그래서 당당히(몸짓은 조심스럽게) 나가서 전화를 걸고, 들어오는 길에 팝콘까지 사와서 아삭아삭 먹었다. 「영화가 연극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첫째, 중간에 나갈 수 있다. 연극 공연장에선 사람이 많으면 빽빽히 끼어있어 못나가고, 관객이 없으면 미안해서 못나간다. 둘째, 보다가 잘 수 있다. 연극 소극장은 의자등받이가 없어 졸기도 힘들다. 셋째, 아무때나 먹을 수 있다. 넷째, 좋은 자리나 나쁜 자리나 요금이 같다. 다섯째, 경쟁력있는 외제도 국산과 같은 값. 여섯째, 그냥 보기만 하면 된다. 연극 공연장처럼 무대로 이끌려 나온 다든지 하는 부담이 없다. 일곱째, 기자로서 하는 말인데 영화는 기사거리가 많다. 우리시대에 영화는 아무래도 메이저요, 연극은 마이너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은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일어나 나갔다. 막이 내려져도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가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에 익숙한 나는 서운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사람 앞에서 움직이는, 살냄새나는 연극은 사람살이와 무척이나 닮았다. 아까 생각했던 것을 거꾸로 뒤집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에는 영화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가 있단다…』하면서. 하나, 사람이 살기 싫다고 중간에 제 맘대로 세상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둘, 남들은 치열하게 깨어있는데 나 혼자 잘 수는 없다. 셋, 먹고 싶다고 아무때나 먹어? 사람은 먹을 때와 뱉을 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려야 하는 법. 넷, 노력과 대가를 치른 만큼 결과를 얻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다섯, 그럼 우리 회사도 잘난 외국 사람으로 다 채우리? 여섯, 남 하는 짓만 우두커니 보다가 인생마치는 것처럼 시시한 게 어디 있담. 일곱, 자기자신이 메이저라고 믿는 사람 어디 나와보시라니까요! 사는데 지치신 분, 정치판 얘기에 신물나신 분, 요즘같이 스산한 날 따끈한 연극 한모금 어떠실지? 김순덕<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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