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36)

  • 입력 1997년 10월 25일 22시 30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4〉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짐꾼의 시선을 끈 것은 붉은 휘장이 쳐져 있는 밀실 안의 광경이었다. 밀실 안에는 온갖 보석과 진주로 장식된 커다란 노가죽나무 침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침상 위에는 아라비아의 공주를 방불케 하는 또 한 사람의 젊은 여자가 꿈꾸는 듯한 얼굴로 비스듬히 혼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 저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이 인간일까?』 그 세번째 여자를 발견하는 순간 짐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모기장처럼 얇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붉은 비단 휘장 안 커다란 침상 위에 혼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여자는 정말이지 빛을 내쏘는 것처럼 아름다웠던 것이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이마는 눈부시게 빛나고, 눈에는 바벨 탑의 마력이 넘치고, 눈썹은 활처럼 곱게 휘어져 있고, 그윽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술은 홍마노처럼 붉었으며, 그 붉은 입술을 빨면 꿀보다 더 달콤한 것 같았으니, 그녀의 얼굴은 대낮의 태양도 무색케 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번째 여자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더없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객청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짐꾼을 여기까지 안내해 온 두 여자를 향해 말했다. 『얘, 아우들아, 왜들 그렇게 서 있어? 이분의 짐을 내려드리지 않고?』 그제서야 첫번째 여자와 두번째 여자는 짐꾼의 머리에서 짐을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광주리에 든 물건들을 꺼내어 각기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모든 일이 끝나자 여자들은 금화 두 닢을 짐꾼에게 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짐꾼 양반.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짐꾼은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넋이 나간 눈으로 세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세상에서도 다시 없을 만큼 아름다운 데다가, 세련된 행동거지며, 부드러운 태도 등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들은 그처럼 많은 술과 음식, 향기로운 꽃과 과일 따위를 준비했지만, 그것을 대접받을 남자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남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저택에 꽃 같은 세 처녀만 살고 있는 그 다소 애상적인 분위기가 짐꾼에게는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왜 돌아가지 않지요? 삯이 모자라는가 보죠?』 짐꾼이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넋이 나간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을 보고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세번째 여자가 말했다. 그제서야 짐꾼은 번쩍 정신이 들어 말했다. 『알라께 맹세코, 아가씨, 삯이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받아야 할 삯은 고작해야 두 디르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아가씨는 저에게 금화를 두 닢이나 주셨습니다. 제가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아가씨들과 아가씨들의 삶에 정신이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아가씨들처럼 아름다운 젊은 여자분들에게 상대가 될 남자가 한 분도 없다는 것이 저로서는 이상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짐꾼이 이렇게 말하자 세 여자들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짐꾼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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