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 칼럼]이회창식 쿠데타

  • 입력 1997년 10월 24일 20시 54분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최후의 결전에 나섰다. 싸움터에서 창에 찔려 죽을지언정 항복은 없다는 기세다. 그로서는 오랫동안 「굴욕」을 참으면서 기다려왔던 피할 수 없는 일전이다. 배수의 진을 쳤다. 뒤로 물러설 여지가 없다. 겹겹으로 둘러싼 적진을 죽을 기세로 돌파하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다. 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하다 못해 무라도 베지 않고는 칼집에 칼을 꽂을 수 없다. ▼ 「대쪽」회복노린 「독립선언」 ▼ 싸움터에서 오가는 독전(督戰)의 구호도 살벌하기 짝이 없다. 전선을 「김대중(金大中)죽이기」에서 「김영삼(金泳三)죽이기」로 확대했다. 그가 마상(馬上)에서 휘두르는 깃발이 「3김 죽이기」이고 보면 「김종필(金鍾泌)죽이기」도 그의 죽이기 전선에 당연히 포함된다. 그는 이 싸움을 「혁명」이라고 했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 성전(聖戰)이라고 명명했다. 자신이야말로 3김정치 부패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일어선 십자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고독하다. 「적군」이 연합전선을 형성하면서 포위망을 좁혀올 태세다. 성(城)안에서 준동하던 「내부의 적」은 성을 버리고 떠난 「배신자」와 내통할 기미를 보이며 그를 말에서 끌어내려 성밖으로 쫓아내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싸움은 성 안에서 더욱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면 그의 성전은 출병도 하기 전에 깃발을 꺾어야 할 판이다. 거사를 감행한 쪽은 이총재쪽이었다. 첫번째 죽이기 대상은 김대중씨였다. 그는 강삼재(姜三載)씨를 시켜서 쏜 비자금 화살 한방으로 김대중씨의 심장을 일거에 멈추게 하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화살은 부메랑이 돼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엉겁결에 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제2의 화살이 엉뚱하게 상왕(上王)의 투구를 맞혔다. 상왕은 진노했다. 싸움판에 끼기를 꺼리던 별동대(別動隊) 검찰은 오히려 그의 무장해제를 촉구했다. 그는 이것을 「음모」로 읽고 내친 김에 상왕 축출을 선언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대회전(大會戰)은 시작됐다. 이회창씨가 비장한 대회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구구한 사연은 굳이 무협지(武俠誌)식 해설을 곁들이지 않아도 대충 들여다보인다. 그는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묘수마다 악수로 변하는 이유를 내부의 적에게 돌리고 그 배후로 지목한 김영삼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명분은 회심의 카드 「3김청산」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쪽」의 회복이자 오랫동안 벼르던 독립의 선언이다. 관전자(觀戰者)들은 이 싸움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정해진 수순이다. 차라리 싸움에 뛰어든 당사자들이 복면과 위장(僞裝)을 벗어 던지고 분명히 편을 가르는 것이 정국의 투명성이나 국민의 선택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쿠데타든 성전이든 이회창씨의 결전은 그런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다. 주문이 있다면 싸움을 깨끗하게 단기전으로 끝내줬으면 하는 것이다. 싸움은 오래 끌수록 상처만 커지는 법이다. ▼ 싸움 깨끗하게 빨리 끝내야 ▼ 결국 천하는 정권교체세력 3김청산세력 세대교체세력 3자 각축장으로 변할 태세다. 그렇게 정립(鼎立)하는 것이 무슨 연합이니 통합이니 하며 전선도 모호한 난전을 벌이는 것보다 판세 읽기가 편하다. 색깔도 분명하고 명분도 뚜렷하다. 여당이 없어지는 마당에 정권재창출이니 후보교체니 하며 뒷공론을 벌일 여지도 없어진다. 대통령은 공정한 심판노릇만 하면 된다. 정계개편을 억지로 막을 이유도 없다. 최후의 선택은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국민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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