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 파국은 막아야 한다

  • 입력 1997년 10월 11일 19시 59분


「김대중(金大中)비자금」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폭로가 꼬리를 물고 반격 재반격이 맞물리면서 여야 서로 퇴로를 차단한 채 격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밀리면 죽는다는 이런 가파른 소모전이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는지, 상처투성이 백병전을 바라보는 국민은 불안하고 두렵다. 정치가 이렇게 막가서는 안된다. 규칙도 없고 질서도 없고 최소한의 금도(襟度)도 없다. 이러한 극한대결로 21세기 선진대국을 열어갈 새 대통령을 뽑는다는 이번 대선이 온전히 치러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김대중비자금」을 넘어 자칫 여야간 총체적 정치자금 폭로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비생산적 정쟁(政爭)으로 나라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다가는 나라의 근본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누가 야당이고 누가 여당인지 역할혼란까지 일으키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한번쯤 주변을 돌아보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급속히 퍼져가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분노와 허탈 환멸의 눈길을 주목하기 바란다. 정치가 국민을 버리고 국민이 정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다. 정치가 경제를 불안에 빠뜨리고 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늪으로 몰아넣는다면 정치의 목표는 실종된다. 그러고도 정치인이 설 땅은 어디에 있겠는가. 여당부터 각성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일차적으로 여당측 「음모정치」의 소산이라는 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책임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TV토론 등을 통한 대통령후보들의 정책 인물검증을 거치면서 가까스로 제 길을 찾아가는 우리 선거문화를 일거에 구태로 되돌리고 퇴보시킨 계기를 만든 쪽은 여당이다. 인기하락을 만회하려는 초조한 위기위식이 앞뒤 돌보지 않는 파괴적 모험을 감행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폭탄부터 터뜨리고 보자는 폭로전 사태의 시작이었다. 지금 신한국당은 검찰의 즉각적인 수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연일 강도 높게 촉구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하겠다면 국민회의측이 공개를 요구하는 증거자료도 즉각 제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경제계의 우려와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김대중씨에게 돈을 주었다는 10개 기업의 명단과 돈을 준 시기 액수까지 공표했다. 국민회의 역시 고발에는 고발로 맞서겠다는 강경대응 방침을 밝혀놓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막상 수사에 착수할 경우 증거자료 수집과정에서 범한 금융실명제 위반 등 여당이 치러야 할 희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민회의측이 김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과 이회창(李會昌)씨의 경선자금 의혹을 본격적으로 폭로하고 나설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럴 경우 여야 공멸은 물론 나라의 대내외적 위신은 크게 추락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나라 형편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 파국을 막아야 한다. 여야가 이성을 되찾아 검찰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까지 사태를 몰고가서는 안된다. 나라가 살아야 정치도 있고 권력도 있고 여당 야당도 있을 수 있다. 여야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나 사심(私心)을 버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이 옳은 길이며 무엇을 먼저 앞세워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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