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폭로전으로 치닫는 大選정국

  • 입력 1997년 10월 8일 19시 52분


대선(大選)을 불과 70여일 앞둔 시점에서 정국이 추악한 대형 폭로전에 휘말려들고 있다. 예기치 않은 돌발사태로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그야말로 생사를 건 정면대결로 치달을 기세다. 신한국당은 제2, 제3의 추가 폭로를 예고하고 있고 국민회의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과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경선자금까지 조사할 국회특위를 제의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신한국당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이 폭로한 「김대중(金大中)비자금」 의혹은 충격적일만큼 구체적이다. 만약 폭로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총재는 법적 책임을 넘어 정치적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아도 김총재에게는 늘 출처불명의 검은 정치자금설이 꼬리처럼 붙어 다녔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주장이 국민회의측 대응대로 「흑색선전의 결정판」이라면 비난의 화살은 신한국당쪽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신한국당은 말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격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신한국당이 자칫 자해(自害)의 칼날이 될 수도 있는 이 「준비된 마지막 카드」를 왜 이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들고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검찰은 수사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고 설령 수사에 착수한다 해도 정치자금 수사의 전례로 보아 단시일 안에 의혹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폭로전은 결국 정치판을 만신창이식 진흙탕싸움으로 밀어넣어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실망만 증폭하는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데는 이번 대선에 대한 김대통령의 불투명한 행보에도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김대통령은 이인제(李仁濟)씨의 탈당을 적극 만류하지 않았고 신한국당 총재직을 이양하면서 이회창씨에 대한 전폭 지원 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하지 않았다. 김대통령의 이중플레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김대통령은 탈당 전에 이인제씨를 신한국당에서 제명시키는 등의 강력한 정치적 응징을 하지 않은 채 탈당을 방치했다. 이씨의 탈당은 결과적으로 이회창씨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혔고 이후보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다. 그로 인한 위기의식에서 이회창후보측은 더 늦기 전에 「김대중대세론」을 역전시키고 대선을 「이회창―김대중」 구도로 고착시키기 위해 사생결단식 폭로를 결행하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폭로전이 3김정치 청산과 새정치 구현이라는 정치적 구호에 얼마나 걸맞은 행태인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신한국당과 강총장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의혹에 관한 모든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 특히 폭로전문가처럼 비치는 강총장은 지난해 「20억원+α」설 때처럼 이번에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법적 책임뿐 아니라 정계퇴진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1세기를 앞두고 정치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폭로전으로 치닫는 작태를 보는 국민의 심경은 참담하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 대선에서도 정책대결은 발붙일 곳이 없다. 정치인들은 당당한 정책대결과 페어플레이를 갈망하는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구태의연한 흑색선전과 무차별 폭로전은 우리 정치가 반드시 추방해야 할 악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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