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16)

  • 입력 1997년 10월 4일 20시 53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2〉 마루프는 또 채권자인 상인들을 불러 모아놓고 피륙을 주어 빚을 갚았다. 일천 디나르의 빚이 있으면 이천 디나르 이상 하는 피륙을 주었으니 상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들로 마루프를 축복했다. 빚을 청산하고 난 마루프는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아낌없이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곁에 서 있던 왕은 그러한 마루프를 차마 말릴 수도 없어서 그저 탐욕스런 눈을 번득이며 그 모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 이리들 다가오세요. 이 옷을 가지세요』 마루프는 궁색한 차림들을 하고 서 있는 사람들을 불러 옷이며 피륙들을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마구 나누어주다보니 그 많던 칠백 짝의 피륙들이 모두 동나고 말았다. 이어 마루프는 아무것도 선물을 받지 못한 장병들을 돌아보더니, 진주 주옥 홍옥 다이아몬드를 세지도 않고 한 움큼씩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왕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참견을 하였다. 『아들아, 이제 웬만큼 해두렴. 그렇게 마구 뿌리다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겠어』 그러자 마루프는 왕에게 말했다. 『오, 아버지, 제 평생 소원이 무엇이었던지 아십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듬뿍 금화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답니다. 제가 이렇게 나누어 준다고 해서 염려하실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얼마든지 많은 재물이 있으니까요』 사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이젠 아무도 마루프의 순수한 선의를 의심할 수 없었고, 누구 한 사람 그를 허풍선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창고지기가 와서 왕에게 말했다. 『임금님, 보고가 가득 차서 이제 나머지 짐은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황금이며 주옥 등 나머지 물건들을 어디다 넣어야 좋을까요?』 그래서 왕은 따로 보관처를 정해주어야 했다. 그 시각에 두냐 공주는 하인들이 날라온 보물들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대체 그이는 이 많은 보물들을 무슨 수로 손에 넣었을까?』 그러나 그녀를 기쁨에 들뜨게 했던 것은 그 보물보다도 남편이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남편과 헤어져 독수공방해야 했던 것이 하룻밤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품이 그리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마루프의 옛 친구 아리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나 의아스러워 혼자말을 하였다. 『이처럼 많은 보물이 생기다니, 대체 마루프 놈은 무슨 거짓말로 누구를 속여넘긴 것일까? 공주가 꾸민 연극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데가 있어. 저 보물들이 공주한테서 나온 것이라면 이렇게 함부로 뿌리지는 못할 텐데 말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보물들이 어디서 나왔건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내 몫의 돈을 되찾았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난 아리는 잠시 후 다시 중얼거렸다. 『나같이 어리석은 백성이 왕실의 일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왕실이 베풀면 그저 공손하게 받는 것이 법도일 뿐이야. 그래서 옛말에도, 「왕이 베풀거든 그저 공손히 받아라. 굳이 곡절을 묻지 말고」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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