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15)

  • 입력 1997년 10월 4일 08시 11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1〉 『이건 틀림없이 연극이야. 그놈이 한 푼 없는 알거지에다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안 공주님께서는 공주님 자신의 체면은 물론이고 왕실의 체면을 생각해서 연극을 꾸민 게 틀림없어. 저 왕궁에서는 어떤 짓이고 못할 일이 없으니까 말야. 그야 어쨌든, 자비하신 알라시여. 알고 보면 그놈도 불쌍한 놈이랍니다. 그리고 그놈이 그렇게 사기를 쳤지만 모두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뿐 한 푼도 착복한 건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놈의 체면을 지켜주시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 주소서!』 아리는 이렇게 옛 고향 친구를 축복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연극이든 아니든 마루프 짐이 도착했다고 하니 이제 그에게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한편, 전령으로 둔갑을 하고 왕에게 편지를 전달했던 마왕은 곧 마루프에게로 되돌아가 지체없이 편지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마루프는 말했다. 『자, 이제 짐을 꾸려라』 이렇게 말한 마루프 자신은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교자에 올라탔다. 그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교자에 올라앉은 마루프는 세상의 어떤 제왕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위풍당당해 보였다. 이윽고 마루프 일행은 도성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미처 절반도 가기 전에 그들 일행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마중을 나오는 왕과 마주쳤다. 그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교자에 올라앉은 사위를 보자 왕은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감동에 찬 목소리로 사위의 무사한 귀환을 축하하고, 진심으로 환영의 말을 하였다. 이어 모든 중신들도 깊은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중한 태도로 마루프 앞에 인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루프가 그동안 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며, 털끝만큼도 거짓이 없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마루프를 의심했던 모든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일행은 으리으리한 행렬을 이룬 채 도성으로 들어섰다. 상인들은 다투어 마루프에게로 몰려들어 그 손에 입맞추었다. 마루프의 옛 친구 아리 또한 마루프에게로 나아가 이렇게 속삭였다. 『이봐, 사기꾼 두목.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자네는 정말 대단한 놈이야. 어쨌든 자네한테는 그게 어울려. 최고 지상하신 알라의 축복이 항상 자네 머리 위에 내려지기를 바랄 뿐이네』 아리가 이렇게 말하자 마루프는 씨익 웃었다. 왕궁으로 되돌아온 마루프는 옥좌에 앉아 말했다. 『황금이 든 짐짝들은 모두 장인의 보고로 옮겨 넣어라. 그리고 피륙이 든 궤짝들은 지금 즉시 이리 가지고 와 보라』 일동은 황금이 든 궤짝들을 창고로 옮기는 한편, 피륙이 든 칠백 개의 궤짝들은 마루프 앞에 옮겨다 놓고는 마루프가 지켜보는 앞에서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마루프는 그 중에서 최상급품들만 골라내어서는 말했다. 『이것은 두냐 공주한테 갖다 드려라. 노예계집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보석이 든 궤짝도 함께 갖다드려라. 시녀며 내시들에게 나누어주십사 하고 말이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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