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최연소 MVP 이승엽 「인간승리 이야기」

  • 입력 1997년 10월 2일 19시 55분


《『그때 아버지(이춘광·55) 어머니 (김미자·49)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최우수선수로 뽑히고 나니 먼저 그때의 아쉬움이 떠올랐습니다』

수능시험에서 40점을 넘지 못해 그렇게 바라던 한양대 진학 꿈을 접은 채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이승엽(21·삼성).》

2일 97프로야구 MVP로 선정된 그는 3년전의 「그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지 가장 기쁜 자리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97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최고의 별로 선정된 「아기 사자」 이승엽은 지난 94년 당시 고졸 신인으로서는 최고액인 계약금 1억3천2백만원을 받고 투수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94년말 왼쪽 팔꿈치 뼈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이승엽이 투수를 포기, 타자로 전업한 것은 그의 천부적 타격 재능을 아까워한 우용득감독의 설득에 따른 것. 이후 3년만에 이승엽은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거듭 났다.

유연한 몸과 부드러운 스윙, 임팩트 순간의 폭발력을 골고루 갖춘 이승엽을 백인천감독은 『가장 신뢰할 만한 타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95년 0.285, 96년 0.303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그에게 지난해 겨울 돌연 허리 통증이 찾아온 것.

『뒤늦게 일본 오키나와 훈련캠프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사실 올시즌을 포기하려 했어요. 박흥식코치가 눈물이 날만큼 혼을 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올시즌 벤치나 지키는 신세였을 겁니다』

6월 들어 다시 타격폼이 흐트러졌다. 이때 이승엽은 스스로 슬럼프를 헤쳐 나왔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에 따라 동료들이 깊이 잠든 새벽 배트를 휘두르며 이를 악물었던 것.

『처음 두 해는 짧게 치며 정확한 타격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팀의 중심타자로 「큰 것」을 노리고 타석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지켜본 것이 홈런왕 등극의 비결입니다』

프로야구 최연소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이승엽. 그는 『즐겁게 미팅나가는 친구들이 가장 부럽다』고 말하는, 아직도 여드름이 남아 있는 미소년이다.

그러나 부상으로 받은 뉴그랜저 승용차를 아버지께 드리겠다는 효자이기도 하다. 역시 강한자는 부드럽다.

〈김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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