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이성교육]『제대로 알면 문제없죠』

  • 입력 1997년 9월 22일 07시 44분


고급 백화점과 식당이 빽빽히 들어찬 싱가포르 최대의 번화가 오차드거리는 주말이면 데이트하러 나온 남녀 중고교생들로 붐빈다. 한 햄버거가게에서 콜라를 마시며 정답게 대화하고 있던 남녀 중학생 4명과 얘기를 나눴다. 싱가포르 엥글리칸중학교 4학년인 데네일(17)과 세인트니콜라스여중 3학년인 훼이리(16)는 2주 전 인터넷에서 국제채팅을 하다 만나게 됐다. 방과후 인터넷에 들어가 채팅 상대를 찾아다니다 동포 여학생인 훼이리를 발견한 데네일이 『나 괜찮은 남자다』고 너스레를 떨자 훼이리가 즉석에서 『그럼 우리 만나자』고 맞장구를 쳤다는 것. 이들은 토요일인 다음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고 네번째 만난 이날은 친구인 추(17)와 주리(16)를 각자 데리고 나와 소개시켜 주는 중이었다. 『이성교제에 대해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데네일은 『부모님도 훼이리와 사귀는 것을 알지만 걱정보다는 「한번 잘 해보라」며 격려해 주신다』고 말했다. 훼이리도 『아버지는 공부 때문에 가끔 걱정을 하시지만 나는 아버지의 과보호가 싫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싱가포르는 사회기강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중학생만 되면 학교와 부모의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이성친구를 사귄다. 1남1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 차안셍(42·사업)은 『사회의 서구화와 매스컴의 영향으로 남녀 학생들이 숨어서 만나는 것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곳 학교들은 저학년 때부터 체계적인 이성교육 프로그램으로 일찍부터 건전한 이성관을 갖고 이성을 대하도록 지도한다. 스프링필드중학교는 지난해부터 이성교육을 정규 교과목에 넣어 모든 학년이 매주 한시간씩 수업을 받도록 한다. 기자가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1학년의 한 교실에서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경을 쓴 학생은 교실 뒤쪽으로 가고 눈이 좋은 학생은 교단 앞으로 모이세요』 렌 위교사(여)의 지시가 떨어지자 학생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그룹을 만들었다. 『참 잘 했어요. 두 그룹은 어떻게 다르지요』 『우리는 안경을 안썼어요』 『우리는 눈이 나빠요』 다음에는 출신 초등학교와 태어난 월별로 모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모이도록 했다. 『우리는 커서 아빠가 되고 쟤들은 엄마가 돼서 아기를 낳아요』 눈치 빠른 이 산치(13)가 질문도 받기 전에 남녀 차이를 말하자 교실안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1학년 학생들에게는 이처럼 성(性)차이와 이성친구 등 기초적인 이성교육이 실시되지만 고학년 학생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성교육을 받는다. 3학년은 「사랑과 우정의 차이」「성숙한 사랑과 미숙한 사랑」 「데이트」 등 이성교제의 예절을 배운다. 4학년 수업에서는 「임신과 유산」 「강간」 「성병과 에이즈」 등 성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식이 주제가 된다. 이 학교는 지난달을 「에이즈 예방교육기간」으로 설정, 복도에 에이즈 예방을 위한 게시판을 설치해 학생들이 에이즈의 실태와 예방법,환자의 모습 등을 직접 보도록 했다. 모하미드인성교육주임(여)은 『이성교육시간에는 형식적인 교과서 수업 대신 주로 그룹토론과 케이스 스터디를 활용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이 많고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신석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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