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다이애나 전영국왕세자비가 사고 당시 이집트 부호와 함께 타고 있던 차가 어떤 차종이고 값은 얼마이며 안전성이 어떻다더라 하는 얘기가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승용차의 브랜드가 소유주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돈있는 사람들이 고급차를 날로 선호하는 추세다. 너도 나도 분수 넘치게 비싼 차만 사려 든다면 몰라도 각자 형편에 맞게 차를 선택하는 것을 꼭 과소비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자동차가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바뀐 탓이다.
▼도지사 시장 등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차(車)사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상당수의 자치단체장들이 멀쩡한 전용차량을 처분하고 새로 고급차를 사들여 수십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지역행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는 「신분과 업무」에 맞도록 새 차로 바꿨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전임자가 몇년씩 타고 다녔던 차를 이어받기가 싫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 좋은 차를 타는 사람과 자치단체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권자의 투표에 따라 소임을 맡은 이상 자치단체장은 공인으로서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도지사나 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주민세금으로 비싼 차를 사는 것이었다면 단체장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들이 자치단체장 자리를 정치적 입지를 키우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거나 지역주민 앞에서 힘이나 과시하는 위치로 생각한다면 더욱 걱정스러운 일이다. 자치단체장들이 주민들을 위한 일을 찾기에 앞서 전용차량 등 외부 치장에 신경쓰는 것은 그런 우려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자치단체장의 자세가 이렇다면 우리 지방자치의 앞날은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