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부실이 국민책임인가?

  • 입력 1997년 9월 5일 20시 07분


경영이 부실한 제일은행에 정부가 출자를 하고 1조원의 특융을 지원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부실은행을 이런 식으로 구제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어정쩡한 국책은행 형태가 된 제일은행이 언제 경영을 정상화해 출자금을 상환할지도 불분명하다. 제일은행 처리방식은 강경식(姜慶植)부총리가 주장해온 시장경제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제일은행 부실의 일차적인 책임은 경영진과 부실채권을 안겨준 기업에 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정부 몫이다. 한보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청와대 고위관리가 제일은행에 압력을 넣어 수조원을 대출했다.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압력을 은행장이 거절하지 못해 이뤄진 관치(官治)금융의 표본이다. 그런 은행의 부실을 국민부담으로 수습하면서 자신들은 아무 책임도 없는 양 은행과 기업만 질책하는 정부가 뻔뻔스럽다. 금융기관의 해외신용도 추락 등 위기를 맞고도 신속히 대응하지 않아 대가는 대가대로 치르고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경제팀의 정책수행능력 부족도 큰일이다.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다 사태가 악화하자 모든 은행의 지급을 정부가 보증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은행들은 이마저도 못믿겠다니 국가체면이 말이 아니다. 경제정책이 매번 실기(失機)하고 효과도 없으니 죄없는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향후 금융산업은 엄청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가 출자하는 형태의 부실은행 구제 선례를 남겼으니 또다른 부실은행이 생기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분명한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파산이나 인수 합병 등 빅뱅식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를 촉진하기 위한 대책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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