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넉달도 못넘기는 경제정책

  • 입력 1997년 8월 28일 20시 17분


정부가 부도유예협약을 폐지 또는 전면 보완키로 한 것은 졸속정책의 표본이다. 지난 4월28일 발효한 이 협약은 그간 나름대로의 기능도 수행했지만 역기능도 많아 폐지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 같다. 어느 정책인들 완전무결할 수는 없으나 넉달도 못넘기고 없애겠다고 나선 것은 정부의 단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정책이 신속하지도 못하고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운용된다면 문제다. 시장경제원리를 내세우는 정부가 금융단에 「지시」해 부도유예협약을 급조할 당시만 해도 대기업 부도 등을 우려해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했다. 그 후 협약은 부도를 억제하기보다 부추기고 중소기업을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 형평성 논란을 불렀다. 기업회생에 앞서 금융단 채권확보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그럼에도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고 넉달을 끌다가 갑자기 폐지하겠다는 건 신중하지 못한 태도다. 특히 기아사태 수습 과정에서 「金善弘(김선홍)회장이 퇴진을 거부하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협약 폐지 추진의 배경이라는 정부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책까지 바꿔가며 기아의 목조르기를 한다는 말인가. 제삼자인수 음모설에 의한 피해의식으로 불안한 기아와 개입하지 않는다면서도 깊숙이 관여하는 정부, 그 사이에 끼여 어정쩡한 채권금융단의 태도가 기아문제 수습을 꼬이게 했다. 정부 기아 금융단 모두는 사태를 해결하는 데 경제논리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격렬한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기아사태를 수습하려면 관계자들이 속히 감정을 버리고 회생대책을 짜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신중한 검토를 거쳐 협약의 문제점을 보완해도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부도유예기업에 대해서는 경영권포기각서 등을 사전에 제출토록 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고 파산이나 회사정리절차를 종합적으로 재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 와중에서 금융권을 자극해 자금시장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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