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지난 13세기 단 10만의 병력으로 드넓은 유라시아대륙 전체를 호령했던 몽골인. 이곳엔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도 말을 타고 초원을 내달리는 그때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사이로 조금씩 「디지털로드」를 향한 원대한 꿈이 내비쳐진다.
몽골인들이 꿈꾸는 디지털로드의 핵심 인프라는 바로 인공위성. 이곳의 정보통신산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위성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몽골엔 아직 자체적으로 위성을 띄울 만한 돈도 기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필사적으로 위성에 매달리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영토가 광대한 데다 인구가 적어 위성을 이용한 통신 정책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 그나마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이다. 몽골의 국토는 한반도의 10배나 되지만 인구는 3백만명이 안된다. 허허벌판. 사방을 둘러보아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몽골 전체에 유선 전화를 보급한다고 가정해보자. 일일이 전신주를 세우고 가정마다 전화선을 연결해야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몽골인의 상당수가 아직도 전통적인 천막집 「게르」를 이용해 계속 이동하는 유목생활을 하기 때문에 전화선은 소용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위성뿐이다. 몽골인이 위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뚜렷하다. 높은 상공에 위성을 띄워 놓고 전 국토를 한꺼번에 커버하는 방식이 가장 돈이 덜 드는 것이다.
위성을 이용하면 또 방송과 통신 등 한꺼번에 다양한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 수신자가 위성수신장치만 갖추면 된다.
몽골은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가 참여했던 위성 서비스인 인터스푸트니크(Inter Sputnik)의 회원국. 최근에는 인텔새트(Intelsat)를 이용한 위성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가입하겠다고 신청해 놓은 상태다. 인텔새트는 국제전화를 비롯한 각종 통신에 이용할 예정.
인공위성이 몽골인의 생활을 바꿔놓은 게 확연히 드러나는 곳은 바로 방송 분야.
『위성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프로그램을 녹화한 테이프를 지방방송국으로 보내 방송했습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하루나 이틀이 지나서야 뉴스를 비롯한 방송을 볼 수 있었죠』
하부(인프라)발전부 통신국 루브산치메드 반즈락치의 말이다.
몽골의 통신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전화보급률만 해도 1백명당 5대 정도. 전화가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자리잡은 중앙전화국에는 시외 전화를 신청해 놓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가득하다.
몽골은 곧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범세계개인휴대통신(GM
PCS)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즈락치는 『현재 ICO글로벌커뮤니케이션스와 활발한 접촉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궤도위성(MEO)의 선구자격인 ICO는 가장 많은 나라의 투자를 이끌어낸 위성통신 사업자. 이 회사의 서비스는 98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위성을 이용한 통신은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쉬운 방법은 아니다. 몽골의 특성에 알맞은 여러가지 기술이 함께 개발되어야 한다.
통신관련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곰보 바산자브 통신국장은 『지리적 특성을 살려 태양열을 이용한 휴대전화 배터리를 개발하는 계획이 진행중』이라고 귀띔한다. 강수량이 불과 우리의 10분의 1. 일년 내내 흐린 날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몽골에 가장 적합한 발전(發電) 방법이다.
어떤 점에서는 남보다 뒤졌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후발 주자의 이점이다. 남들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시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몽골은 주저없이 디지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바에 차세대를 겨냥한 방식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바산자브 국장은 디지털오디오방송(DAB) 회사인 미국의 월드스페이스의 서비스를 좋은 예로 언급했다. 그는 『99년부터 몽골에서 시작될 위성 서비스는 방송뿐만 아니라 곧 팩스나 데이터 등 다른 부가통신도 함께 디지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며 『모든 종류의 통신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시작할 몽골에 잘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로드. 아직 한번도 밟아 보지 않은 그 길을 몽골이 이제 가려하고 있다.
〈울란바토르〓홍석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