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성인/경제현실 똑바로 보자

  • 입력 1997년 8월 27일 20시 40분


기아사태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불신과 회의(懷疑)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다. 달포를 넘기고 있는 기아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갈수록 꼬여만 가고,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하락에서 연유한 외환시장의 교란은 환율이 9백선을 돌파하고 나서도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 기아사태와 외환위기 ▼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기에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가. 현실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최근의 기아사태와 외환위기는 물론 서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만 그 경제적 본질은 크게 다르다. 기아사태는 부실하게 경영된 기업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구조조정 문제의 표본이고 최근의 외환시장 교란은 시장의 불안정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위기관리 문제의 영역에 속한다. 구조조정의 궁극적 목표는 효율성이다. 다시 말하면 비효율적인 기업을 적절히 정리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반면에 위기관리의 궁극적 목표는 안정성이다. 시장교란을 유발하는 불안심리와 투기심리, 그리고 가수요 등을 잠재워 시장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제인 반면, 위기관리는 경제에 커다란 충격이 간헐적으로 찾아왔을 때에만 문제가 된다.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구조조정은 컨디션이 안좋은 선수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것이고 위기관리는 경기 중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나 선수와 관중이 동요할 때 이를 적절히 진정시키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문제는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임기응변의 정책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반면 위기관리의 경우에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동물적 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구조조정시에는 모든 경제주체를 법과 제도에 규정된 바에 따라 무차별하게 대우하는 형평의 논리가 뒤따라야 경제주체가 이를 수용하는 반면, 위기관리시에는 과단성과 신뢰가 뒷받침돼야 시장이 진정된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때때로 구조조정과 위기관리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한 채 경제처방을 내놓음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고 정책집행의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사례인 기아사태의 경우, 아직도 시장 일각에는 기아가 다른 구조조정 대상기업들과는 다른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심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외환위기에 대한 정책당국의 대응에서도 재경원과 한은의 손발이 맞지 않아 시장에 신뢰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크다. ▼ 정책 타이밍 맞춰야 ▼ 특히 정부는 시장논리를 앞세워야 할 때는 이를 무시하고, 시장논리를 잠시 유보해야 할 때에는 오히려 시장에 내맡기는 부적절한 정책을 사용하기도 했다.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 해결 역시 시장이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기아사태와 관련해 지금 은행이 정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것이다. 반면에금융시장의 위기는 위기관리의 차원에 속한다. 그러나 정부는 금융시장에 대한 대책을 발표할 때에는 시장논리를 내세워 시간을 질질 끌지 않았던가. 흔히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경제논리에 따른 해답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전제가 되는 현상인식이 정확해야 한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당국자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전성인(홍익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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