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함정금/담배끊기 그렇게 어려운지…

  • 입력 1997년 8월 1일 07시 50분


한결같이 초록색으로 빛나던 가지끝의 풀꽃들,7월의 하늘도 장마의 빗줄기에 움츠리고, 젖은 몸으로 떨고 섰는 물안개같이 신비로운 장미꽃을 보며 아련한 추억을 더듬어 본다. 35년 전 내가 33세 때 일이다. 가을 해가 창가를 기웃거리고 스치는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황량한 어느날. 아홉살 난 딸아이를 가슴에 묻고 슬픔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담배를 피워 봐』하던 친구의 말에 생전처음 담배를 입에 물어봤다. 눈물이 나고 기침이 나고 가슴이 울렁거려 도저히 피울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강원 횡성군 어느 산골 마을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사려깊고 자상한 남편이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게 흠이다. 담배가 몸에 해가 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 남편은 어느날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집안의 담배와 꽁초까지 다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끊은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밤 12시쯤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담배를 달라고 애원했다. 아무리 그냥 재우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시간은 밤 1시. 어쩔 수 없이 담뱃가게에 가서 『여보세요, 담배 파세요』 소리쳐 보았지만 대답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 그 때까지도 남편은 이구석 저구석 꽁초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이 하도 딱해 옆집 친구네 집으로 갔다. 사립문을 살며시 여는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살금살금 들어가 친구의 방문앞까지 갔을 때 마침 뒷간에 갔던 친구의 남편이 『도둑이야』 소리와 함께 마당비를 치켜들고 달려왔다. 순간 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도둑이 아니에요. 옆집 영희 엄마인데 담배좀 얻으러 왔어요』 그 소리에 친구 남편은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주어 남편에게 전한 일이 있다. 결국 남편은 담배를 끊지 못했다. 기쁘다고 한 대, 슬프다고 한 대, 심심하고 외롭다고 한 대…. 그러면서도 고희를 넘기도록 수십번도 더 담배를 끊었었다. 오늘도 예전처럼 꽁초까지 다 버린 뒤라 아들의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한 개비씩 꺼내오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도둑으로 몰려 혼쭐이 났던 때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멋쩍게 웃었다. 담배란 그렇게 끊기 어려운 것인가. 그런데 아직 꽃망울과 같은 10대들 특히 여성 흡연자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흡연하며 늙은 여자는 더욱 흉하게 보인다. 젊은 여성들은 아예 담배를 배우지 않도록 충고하고 싶다. 함정금(강원 원주시 태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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